처치와의 보이지 않는 경주

142025년 08월 08일4

튜링의 논문은 알론조 처치의 논문이 발표된 지 불과 한 달 뒤에 세상에 나왔다. 수학계의 반응은 미묘했다. 이미 결정 문제의 답은 나온 상황. 튜링의 업적은 자칫 처치의 증명에 대한 ‘또 다른’ 증명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맥스 뉴먼을 비롯한 소수의 통찰력 있는 학자들은 튜링의 논문이 가진 독창적인 가치를 즉시 알아보았다.

알론조 처치의 람다 계산은 강력했지만, 논리학자들만의 언어였다. 그 추상성은 일반 수학자들이나 엔지니어들이 '계산'이라는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의 증명은 '왜' 안되는지에 대한 완벽한 논리적 답변이었지만, '무엇이' 안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반면 튜링의 기계는 달랐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듯 선명했다. 테이프, 헤드, 상태. 누구나 머릿속으로 그 기계의 작동을 따라가 볼 수 있었다. '계산'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가장 단순한 기계적 단계들로 분해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처치의 논문이 철학자에게 말을 건넸다면, 튜링의 논문은 엔지니어에게 말을 걸었다.

튜링은 자신의 논문 부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a-machine과 처치의 람다 계산이 동등함을 증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즉, 튜링 기계로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람다 계산으로도 표현할 수 있고, 람다 계산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튜링 기계로도 계산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두 개의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이 사실은 완전히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번역을 통해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튜링은 노트 위에 두 시스템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 시작했다.

람다 계산의 '함수 적용(application)'은 튜링 기계에서 '특정 상태로 진입하여 일련의 계산을 수행하는 것'에 해당했다.
람다 계산의 '변수 치환'은 튜링 기계에서 '테이프의 특정 위치에 값을 복사하고 기존 값을 지우는 작업'으로 구현될 수 있었다.

과정은 험난했다. 두 시스템의 철학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튜링은 끈질기게 파고들었고, 마침내 두 세계를 잇는 논리적 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다.

이 증명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계산 가능성(Computability)'이라는 개념이 인간이 고안한 특정 형식주의(튜링 기계든, 람다 계산이든)에 의존하지 않는, 수학의 근본적이고 객관적인 속성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만약 전혀 다른 배경과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두 시스템이 결국 같은 계산 능력을 갖는다면, 아마도 그것이 바로 '기계적으로 계산 가능한 것'의 진정한 경계일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훗날 '처치-튜링 명제(Church-Turing Thesis)'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는 증명된 정리는 아니지만, 모든 계산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강력한 믿음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고리즘으로 풀 수 있는 모든 문제는 튜링 기계로 풀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리즘', '효과적인 절차', '기계적 계산'이라고 부르는 그 어떤 개념을 상상하더라도, 그 능력의 한계는 결국 튜링 기계의 능력을 넘어설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튜링은 이 보이지 않는 경주에서 처치에게 선수를 빼앗겼지만, 그 결과 더 큰 것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섬이 아니라, 계산 가능성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일부임을 확인했다.

그의 논문은 더 이상 결정 문제에 대한 '대체 증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직관적이고 강력한 정의였으며, 미래의 컴퓨터 과학이라는 학문 전체를 떠받치는 주춧돌이었다.

뉴먼 교수는 튜링에게 프린스턴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가서 직접 알론조 처치를 만나게. 자네들은 서로에게 배울 것이 많을 거야. 보이지 않는 경주는 끝났네. 이제는 협력할 때야."

튜링은 망설였다. 낯선 미국 땅, 새로운 사람들. 하지만 그의 지적 호기심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그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또 다른 위대한 정신과 직접 부딪쳐보고 싶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 벌어질 지적 격돌을 향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