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를 노리는 자

382025년 08월 21일5

파이어폭스의 WebGPU 출시는 생태계에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개발자들은 이제 안심하고 WebGPU를 차세대 웹 그래픽의 표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드미트리와 Dawn 팀은 모질라의 wgpu 팀과 긴밀히 협력하며, 브라우저 간의 미세한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 평화는 애플의 세계 개발자 회의(WWDC) 키노트 영상 하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키노트 무대.
애플의 한 고위 임원은 사파리 브라우저의 새로운 기능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리고 마침내, Safari 17에 WebGPU가 정식으로 탑재됩니다.”

화면에는 화려한 3D 그래픽 데모가 펼쳐졌다.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침내 마지막 거인이 참전한 것이다. 이제 모든 주요 브라우저가 WebGPU를 지원하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축하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키노트의 다음 내용이 문제였다.

임원은 말을 이었다.
“WebGPU는 웹에 놀라운 성능을 가져다줄 겁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사파리에서 WebGPU의 성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습니다. 저희의 테스트 결과, 동일한 WebGPU 코드라도 사파리에서 실행했을 때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보다 최대 20% 더 빠른 렌더링 속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드미트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연구실의 다른 팀원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20%?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WebGPU는 표준 API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브라우저에서 실행하든 비슷한 성능을 내야 정상이었다. 20%라는 수치는 단순한 최적화의 차이를 넘어선,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애플의 발표는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우리는 단지 표준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표준 위에서 최고의 성능을 구현했다. 진정한 WebGPU의 왕좌는 바로 우리, 사파리다.’

다음 날 아침, 드미트리는 팀을 소집했다.
“어제 WWDC는 모두 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애플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허풍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요?”

카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드미트리.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요.”

모두의 시선이 카이에게로 향했다.
“바로 Metal입니다. 사파리의 WebGPU 구현체는 Metal 위에 직접 만들어집니다. Metal은 애플이 자신들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위해 직접 설계한 API입니다. 드라이버 레벨까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Dawn은 윈도우에서는 DirectX 12, 리눅스와 안드로이드에서는 Vulkan, 그리고 macOS에서는 Metal이라는 세 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번역기’의 역할을 해야 했다. 이 번역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약간의 오버헤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파리는 달랐다. 그들은 오직 Metal이라는 단 하나의 언어만 구사하면 되었다. 번역기가 필요 없었다. WebGPU API 호출을 거의 일대일로, 가장 효율적인 Metal 명령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성능 우위의 비밀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입니까?”
한 젊은 엔지니어의 목소리에 패배감이 묻어났다.

그 순간, 드미트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결론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그들의 접근법에는 명백한 강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약점도 존재합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의 플랫폼만 신경 쓰면 되지만, 우리는 세상의 모든 플랫폼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의 강점은 바로 그 ‘보편성’에 있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사파리보다 20% 빨라질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Dawn의 추상화 계층을 계속해서 개선할 수 있습니다. Vulkan과 DirectX 12의 새로운 기능들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번역 과정의 오버헤드를 1%씩, 0.1%씩 줄여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선 사항은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에게도 똑같이 혜택을 주게 될 겁니다. 애플이 자신들의 왕국에서 왕이 되는 동안,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의 신뢰를 얻는 겁니다.”

그의 말은 팀원들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다. 패배감이 경쟁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성능 벤치마크는 얼마든지 특정 시나리오에 유리하게 조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직접 검증해야 합니다. 애플이 공개한 데모를 가져와서,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성능 차이가 발생하는지, 픽셀 단위로 분석합시다. 그들의 비밀을 알아내고,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합니다.”

그날부터 Dawn 팀의 연구실에는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안정성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목표는 ‘최고의 성능’이었다.

애플의 참전은 WebGPU 생태계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더 이상 표준을 준수하는 협력의 시대가 아니었다. 표준이라는 동일한 규칙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진정한 경쟁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드미트리와 Dawn 팀은, 기꺼이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