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화 패치가 적용된 새로운 Dawn 빌드.
연구실의 모든 시선이 벤의 모니터에 고정되었다. 애플이 던진 20%라는 숫자에 대한 구글의 첫 번째 대답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벤은 먼저 사파리에서 벤치마크를 다시 실행했다. 결과는 이전과 같았다. 초당 90프레임. 견고하고 안정적인 성능이었다.
다음은 크롬 차례였다. 그는 패치가 적용된 빌드를 실행했다.
화면의 프레임 카운터 숫자가 빠르게 변동하다가 이내 안정되기 시작했다.
“와…!”
여기저기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20%에 달했던 거대한 격차는 이제 오차 범위 수준인 2~3%로 좁혀졌다. 완벽한 역전은 아니었지만, 사실상의 무승부나 다름없었다. Dawn 팀은 자신들의 분석이 정확했고, 그들의 엔지니어링 역량이 애플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증명해 냈다.
연구실은 잠시 동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들은 경쟁자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낸 것이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그 순간에도, 더 깊은 곳을 보고 있었다.
그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격차를 거의 따라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건 시작에 불과하니까요.”
팀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애플의 데모를 ‘역공학’해서 그들의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이건 매우 수동적이고, 사후 대응적인 방식입니다. 애플이 또 다른 최적화 기법을 들고나오면, 우리는 또다시 그들의 뒤를 쫓아야 할 겁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우리는 이 게임의 판도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스스로 최적의 길을 찾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화이트보ode에 새로운 단어를 썼다.
‘GPU 드라이버’
“우리는 지금까지 Dawn이라는 엔진, 즉 우리 자신의 코드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성능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만드는 GPU 드라이버입니다. 드라이버야말로 우리의 API 호출을 실제 하드웨어 명령으로 바꾸는 최종 연금술사죠.”
그의 말에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미트리의 말이 맞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Metal API를 완벽하게 호출해도, AMD, Nvidia, Intel, 그리고 애플 실리콘의 GPU 드라이버가 그 호출을 어떻게 해석하고 처리하느냐에 따라 최종 성능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드미트리가 말을 이었다.
“바로 그겁니다. 이제 우리의 다음 단계는, 이 보이지 않는 손과 ‘협력’하는 방법을 찾는 겁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글이라는 성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드웨어 제조사들의 문을 직접 두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프로젝트의 방향을 완전히 트는 선언이었다.
Dawn 팀의 역할은 이제 코드 최적화를 넘어, 외부 파트너십과 기술 외교의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했다.
그날 이후, 드미트리의 일정은 미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는 엔비디아(Nvidia)의 드라이버 개발팀과 화상 회의를 열었다.
“저희가 Dawn에서 Vulkan의 특정 기능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귀사의 지포스(GeForce) GPU에서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저희가 놓치고 있는 드라이버의 숨겨진 특성이 있습니까?”
그는 인텔(Intel)의 그래픽스 아키텍처 팀과 소통했다.
“인텔의 내장 그래픽은 메모리 대역폭이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텍스처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현재의 방식보다, 대역폭을 덜 사용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소통은 일방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드미트리는 그들에게 Dawn의 로드맵을 투명하게 공유했다.
“저희는 앞으로 WebGPU에 메시 셰이더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귀사의 차세대 드라이버가 이 기능을 안정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수억 명의 웹 사용자들이 새로운 그래픽 기술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방어적이던 하드웨어 제조사들도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거대한 웹 플랫폼인 크롬이 자신들의 하드웨어 위에서 최고의 성능을 내는 것은, 결국 그들의 제품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드미트리에게 비공개 문서와 내부 벤치마크 도구를 공유해주기 시작했다. 드라이버의 특정 동작 방식이나, 피해야 할 성능 저하 패턴에 대한 귀중한 정보들이 Dawn 팀으로 흘러들어왔다.
드미트리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싸우고 있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하드웨어 제조사들이라는 보이지 않는 지원군이 서 있었다.
애플과의 성능 경쟁은 그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진정한 최적화는 코드 몇 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제 Dawn이라는 엔진을 넘어, WebGPU라는 거대한 생태계 전체를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