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발걸음

552025년 08월 30일4

최초의 삼각형이 화면에 떠오른 것은 기념비적인 성공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제된 실험실 안에서의 일이었다. 에픽게임즈가 제기했던 진짜 문제, 즉 수십만 개의 객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Dawn 팀의 프로토타입 성공 소식은, 가장 먼저 에픽게임즈의 R&D 팀에 전달되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이 기술을 간절히 기다려온 이들이었다.

며칠 후, 에픽게임즈의 마일스로부터 드미트리에게 한 통의 연락이 왔다.
“드미트리, 당신 팀의 성과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인 것 같군요. 당신들이 만든 실험적인 Dawn 빌드를 저희에게 제공해 줄 수 있습니까? 저희 언리얼 엔진 5에 직접 이식해서, 실제 게임 환경에서 한계를 테스트해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드미트리가 기다려온 제안이었다. Dawn 팀이 만든 것은 기초적인 도구 상자에 불과했다. 이 도구로 진짜 집을 지을 수 있는지는, 실제 건축가인 에픽게임즈의 손에 달려 있었다.

Dawn 팀은 즉시 언리얼 엔진과 연동할 수 있도록 특별히 컴파일된 라이브러리 파일과 헤더 파일들을 준비하여 에픽게임즈에 전달했다. 이것은 단순한 파일 전달이 아니었다. 두 거대 기술 기업의 가장 깊숙한 기술력이 만나는, 긴밀한 협력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두 팀 사이에는 거의 매일같이 화상 회의가 열렸다.

초기 단계는 순탄치 않았다. 언리얼 엔진의 거대하고 복잡한 렌더링 아키텍처, ‘나나이트(Nanite)’와 ‘루멘(Lumen)’을 WebGPU의 메시 셰이더 파이프라인 위에 올리는 것은 상상 이상의 난관이었다.

마일스가 화면에 복잡한 셰이더 코드를 띄우며 설명했다.
“저희 엔진은 수십 개의 다른 버퍼에서 데이터를 읽어와, 복잡한 조건 분기에 따라 지오메트리를 동적으로 생성합니다. 그런데 현재 WGSL의 메시 셰이더 사양 초안에는, 저희가 필요로 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기능—예를 들어, 셰이더 안에서 다른 셰이더를 호출하는 기능이나, 더 유연한 데이터 출력 방식—이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Dawn 팀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실제 AAA급 게임 엔진의 요구사항이었다. 그들이 만든 ‘삼각형 그리기’ 수준의 프로토타입은, 언리얼 엔진이라는 거인의 발걸음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연약했다.

드미트리는 이 피드백을 즉시 W3C 그룹에 전달했다.
“여러분, 실제 게임 엔진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메시 셰이더 사양에 몇 가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보고는 커뮤니티에 다시 한번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디까지를 표준 기능으로 포함하고, 어디까지를 각 엔진의 구현에 맡길 것인가?
웹의 보안 모델을 해치지 않으면서, 네이티브 수준의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Dawn 팀과 에픽게임즈 팀은 함께 우회로를 찾아 나섰다. 사양이 확정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그들은 현재의 제약 안에서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Dawn 팀은 언리얼 엔진이 요구하는 특정 데이터 패턴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Dawn의 내부 스케줄러를 수정했다.
에픽게임즈 팀은 WGSL의 한계를 피하기 위해, 일부 로직을 컴퓨트 셰이더로 미리 처리한 뒤 그 결과를 메시 셰이더로 전달하는, 창의적인 파이프라인을 설계했다.

그들은 마치 두 개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함께 탑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았다.

몇 주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마일스로부터 한 편의 짧은 영상이 도착했다.
영상 속에는 그들이 처음 보았던, 수십만 개의 소행성이 흩어져 있는 우주 공간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화면 한쪽에 떠 있는 성능 프로파일러. 그곳에서 이전과 같이 비명을 지르던 CPU 사용률 그래프는, 거짓말처럼 파란색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든 부담은 이제 GPU의 몫이었다.

마일스의 흥분된 목소리가 영상에 담겨 있었다.
“성공입니다, 드미트리. CPU 컬링 병목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프레임 속도는 두 배 이상 향상되었습니다. 이것은 웹 게임의 역사를 바꿀 겁니다.”

드미트리는 영상을 팀원들과 함께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그들이 만든 작은 프로토타입이, 거대한 게임 엔진의 심장부에서 뛰며,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느껴왔던 그 어떤 성취감보다도 강렬했다.

최초의 삼각형이 황무지에 꽂은 깃발이었다면, 언리얼 엔진의 이 데모는 그 황무지 위에 세워진 첫 번째 도시였다. 이제 다른 모든 이들이 이 도시를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며 이곳으로 모여들 것이었다.

거인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웹 그래픽의 지평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넓혀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