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의 그늘

942025년 09월 18일5

device.lost API의 도입은 개발자들에게 컨텍스트 상실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주었다. WebGPU는 이제 기술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성숙의 정점에 다다른 듯 보였다. 드미트리는 이제 당분간은 큰 위기 없이,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가꾸는 데 집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안일한 생각을 뒤흔든 것은, 그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가장 믿었던 동료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모질라(Mozilla)의 알렉스였다.

사건은 W3C의 공개적인 깃허브 토론장에서 벌어졌다.
한 개발자가 WGSL의 특정 기능에 대해 질문을 올렸고, 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알렉스는 다음과 같은, 폭탄과도 같은 문장을 남겼다.

“...We, in Mozilla, are becoming increasingly concerned about the growing complexity of the WGSL specification. While we value the rich feature set, we believe it may be moving in a direction that is difficult to implement securely and efficiently across all platforms. We are internally exploring alternative paths.”
(저희 모질라는, WGSL 사양의 증가하는 복잡성에 대해 점점 더 우려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기능도 가치 있지만, 현재의 방향이 모든 플랫폼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는 내부적으로 대안적인 경로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대안적인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그 문장은 WebGPU 커뮤니티에 핵폭탄처럼 떨어졌다.
수년간 함께 표준을 만들어 온 핵심 파트너, 모질라가 현재의 방향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제시가 아니었다. 이것은 잠재적인 ‘분기(Fork)’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우 심각한 신호였다.

Dawn 팀의 연구실은 술렁였다.
“대체 무슨 소리야? 알렉스가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모질라가 WebGPU 지원을 포기하려는 걸까?”

드미트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알렉스와 수년간 함께 논쟁하고 협력하며 깊은 신뢰를 쌓아왔다. 그는 알렉스가 결코 경솔하게 이런 발언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는 그가 모르는, 더 깊은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는 즉시 알렉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여 화상 회의를 요청했다.
화면 너머로 나타난 알렉스의 표정은 어둡고 지쳐 보였다.

“알렉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의 발언 때문에 커뮤니티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드미트리가 다급하게 물었다.

알렉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드미트리.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아니었어.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덮어둘 수 없다고 판단했네.”

그가 설명하는 모질라의 입장은 이러했다.
WGSL은 계속해서 새로운 기능들—모듈 시스템, 타임라인 동기화, 다중 큐, 그리고 미래의 레이 트레이싱과 AI 가속 기능들—을 흡수하며 점점 더 거대하고 복잡한 언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드미트리, 당신들의 Dawn 팀은 세계 최고의 컴파일러 엔지니어들을 수십 명이나 보유하고 있소. 구글에게 이 모든 복잡성을 감당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네. 모질라는 비영리 재단이고, 우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 우리는 이 모든 새로운 사양을, 우리의 작은 wgpu 팀이 Rust로 따라잡는 것이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소.”

그의 목소리에는 좌절감이 묻어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WebGPU는 결국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만이 제대로 구현하고 유지보수할 수 있는, ‘그들만의 표준’이 되어버릴 걸세. 그것은 우리가 함께 꿈꿨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웹의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야.”

그들의 ‘대안적인 경로’란, WebGPU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WGSL 대신, 이미 검증되고 안정적인 SPIR-V를 웹 브라우저가 직접 소비하는, 초기에 기각되었던 바로 그 아이디어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었다. 물론, 웹의 보안 모델을 해치지 않도록, 매우 제한되고 검증된 형태의 SPIR-V만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드미트리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더 많은 기능’, ‘더 강력한 성능’만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모든 것을 함께 구현해야 할 동료들의 현실적인 고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표준의 성공은, 가장 빠른 주자가 얼마나 멀리 나아갔느냐가 아니라, 가장 느린 주자도 낙오하지 않고 함께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트너들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너무 멀리 달려와 버렸다.

그가 만든 표준의 그늘 아래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가 지쳐 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알렉스… 미안하네. 내가 너무 앞서갔군.”
드미트리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는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새로운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WebGPU의 미래를 위해, 그는 이제 속도를 늦춰야 할지도 몰랐다. 어떤 기능을 추가하고, 어떤 기능을 덜어낼 것인지, ‘구현의 비용’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통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했다.

그의 여정은 이제, 기술의 경계를 넓히는 것을 넘어, 함께 가는 이들의 보폭을 맞추고, 모두가 함께 도달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재설정하는, 가장 어려운 종류의 리더십을 시험받고 있었다. 그는 이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그 자신의 리더십이, 가장 큰 심판대 위에 오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