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광고는 누가 봐야 하는가?
제12화
발행일: 2025년 06월 04일
팀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어 있었다. ‘1200ms’라는 절망적인 숫자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185ms’라는 희망의 증거가 자리 잡았다. 사무실에는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엔지니어들은 서로의 성과를 축하하며 커피를 마시고, 다음 최적화 단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나눴다.
알렉스는 자신의 자리에서 시스템 로그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자신이 발견한 작은 실마리가 거대한 병목 현상을 해결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는 이제 이 팀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데이비드 첸이 팀 전체를 소집했다. 이번에는 비상 회의가 아니었다.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었다.
“여러분, 우리는 해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속도의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죠. 이건 엄청난 기술적 성취입니다.”
팀원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중요한 질문 하나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광고를 가장 빠르게 팔 것인가’에만 집중했죠. 이제 진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짧은 문장을 썼다.
"이 광고는 누가 봐야 하는가?"
알렉스는 그 문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데이비드는 구체적인 예를 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용자가 자동차 전문 리뷰 사이트를 방문했다고 가정합시다. 이 사용자가 페이지를 열자, 우리 애드 익스체인지에서는 경매가 열립니다. 두 명의 광고주가 입찰에 참여합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두 명의 입찰자를 적었다.
- 나이키: 신상 농구화 광고. 입찰가 $1.50
- 포드: 신형 SUV 자동차 광고. 입찰가 $1.20
“자, 알렉스. 지금 우리의 시스템은 누구의 광고를 낙찰시키게 될까요?”
“당연히…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나이키입니다.”
“맞습니다.”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은 나이키의 광고를 보여줄 겁니다. 매체사는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으니 만족하겠죠. 하지만 과연 이게 최선일까요?”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데이비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생각해봅시다. 사용자는 자동차 정보를 얻으러 왔는데, 상관없는 농구화 광고를 보게 됩니다. 광고 효과는 거의 없겠죠. 포드는 명백한 잠재 고객을 눈앞에서 놓쳤습니다. 심지어 나이키조차도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농구화 광고비를 썼으니, 결국 예산을 낭비한 셈입니다.”
그 순간, 회의실의 모두가 깨달았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은 그저 ‘가장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무작위로 광고를 보여주는, 속도만 빠른 기계에 불과했다.
사라가 입을 열었다.
“결국 광고의 가치는 지면의 위치뿐만 아니라, 그 지면을 ‘누가’ 보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거군요.”
“정확해.”
데이비드는 화이트보드에 있던 Ad Space (광고 지면)
라는 단어 위에 X표를 쳤다. 그리고 그 옆에 새로운 단어를 썼다.
Audience (사용자)
“우리가 진짜로 거래해야 하는 것은 빈 광고 칸이 아닙니다. 바로 그 광고 칸을 보고 있는 ‘특정 사용자에게 도달할 기회’입니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용자에게는 자동차 광고를, 운동에 관심 있는 사용자에게는 스포츠 용품 광고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광고주, 매체사, 그리고 사용자 모두가 만족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알렉스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이제껏 해결해온 Latency 문제는 단지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들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었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시스템이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 페이지를 보고 있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그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그를 어떻게 식별하고 분류할 것인지. 속도의 전쟁이 끝나자, 이제는 ‘데이터’와 ‘지능’의 전쟁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