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사슬, 블록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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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29일

강화 학습 기반의 입찰 AI는 구글의 기술적 우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시스템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광고비를 집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복잡하고 고도화된 시스템은, 광고주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의심을 낳았다.

그 의심의 핵심에는 ‘Ad Tech Tax’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P&G 같은 거대 광고주와의 분기별 비즈니스 리뷰 미팅에서 터져 나왔다. P&G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는 구글이 제시한 화려한 성과 보고서 대신, 아주 단순한 돈의 흐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알렉스, 저희가 지난 분기에 당신들의 플랫폼을 통해 1,000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그런데 저희와 거래하는 주요 매체사들에게 확인해보니, 그들이 광고 수익으로 실제로 지급받은 금액은 다 합쳐서 5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500만 달러는 어디로 간 겁니까?”

회의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것은 광고팀이 가장 대답하기 껄끄러워하는 질문이었다.

데이비드가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 비용에는 저희 애드 익스체인지의 수수료, 광고주께서 사용하시는 DSP의 수수료, 매체사가 사용하는 SSP의 수수료, 데이터를 제공한 제3자 데이터 업체의 비용, 그리고 뷰어빌리티나 사기 탐지 솔루션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P&G 책임자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각각의 항목이 정확히 얼마인지, 어떤 거래에서 얼마의 수수료가 나갔는지에 대한 투명한 ‘통합 원장’을 저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복잡한 공급망 어딘가에서 돈이 새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입니다.”

이 ‘신뢰의 위기’는 팀에 큰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은 너무나 복잡해져서, 정작 돈을 내는 광고주조차 돈의 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블랙박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던 팀 회의. 모두가 기존 시스템 내에서 리포팅을 강화하는 방안만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젊은 엔지니어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는 최근 분산 시스템 연구팀에서 전입해 온 ‘켄지’였다.

“저… 만약, 모든 거래 기록을 아무도 위변조할 수 없는 공개된 원장에 기록하면 어떨까요?”

“공개된 원장이라니?” 사라가 되물었다.

“네.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회의실에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에게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에나 쓰이는, 느리고 비효율적인 기술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 시니어 엔지니어가 즉시 반박했다.
“켄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우리 시스템은 100밀리초 안에 경매를 끝내야 합니다. 블록체인의 거래 처리 속도로는 어림도 없어요. 이건 기술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알렉스는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그는 켄지의 아이디어에 담긴 ‘원칙’에 주목했다.
“켄지, 계속 말해보게. 속도 문제를 떠나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알렉스의 지지에 힘을 얻은 켄지는 말을 이었다.
“핵심은 ‘탈중앙화된 신뢰’입니다. 지금은 모든 참여자가 구글이라는 중앙화된 주체를 믿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을 도입하면, 광고주, DSP, SSP, 매체사 등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거래 원장을 공유하게 됩니다. 특정 거래에서 광고비 1달러가 어떻게 쪼개져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가 모든 참여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그 기록은 절대 수정될 수 없죠. 구글조차도요.”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문제를 구글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가 함께 검증할 수 있는 투명한 판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알렉스는 켄지의 아이디어가 가진 잠재력을 보았다. 물론 실시간 입찰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있었다.

알렉스는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실시간 거래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하지만 ‘사후 검증(Post-transaction Audit)’ 용도로 소규모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봅시다. P&G와의 캠페인 하나를 선정해서, 거래가 모두 끝난 뒤에 발생한 모든 거래 로그를 우리의 비공개 블록체인에 기록해봅시다. 그리고 P&G와 관련 매체사에게 그 원장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겁니다. 그들이 직접 자신들의 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추적할 수 있도록요.”

그것은 현실적인 타협점이자, 대담한 실험의 시작이었다. 속도가 아닌 ‘투명성’이라는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첫걸음.

팀의 역할은 이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넘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기술로 구축하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알렉스는 켄지에게 프로토타입 개발의 리드를 맡겼다. 이 젊은 엔지니어의 손에서, 광고 생태계의 불투명한 안개를 걷어낼 새로운 사슬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