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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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18일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다. 5년. 혹은 10년. 시간의 개념조차 희미해진 이 새로운 시대에, 인류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조심스럽게, 그러나 끈질기게 적응해 나갔다.

‘양자 안정화 네트워크’는 이제 지구 문명의 중추 신경계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공명 타워들은 대륙을 연결했고, 위성 센서들은 밤낮없이 우주의 미세한 떨림과 인류 내면의 양자 파동을 감시하고 조율했다. 양자 능력의 존재는 더 이상 비밀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QSN의 관리 하에, 잠재 능력자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자신의 힘을 이해하고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사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아키텍트의 시선 아래 놓여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불안한 평화 속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릴리 리브스는 이 모든 변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TQA(지구 양자 관리청)의 명예 의장이자, 인류와 에크릴 종족(그리고 간헐적으로 접촉해 오는 다른 온건파 외계 문명들) 사이의 핵심 중재자. 그녀의 이름은 경외와 신비의 대상이었고, 그녀의 존재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수호신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녀는 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릴리였고, 동시에 에단이었으며, 그 이상인 무언가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TQA 본부 최상층, 고요한 관측실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증폭된 의식을 우주의 광활한 캔버스 위로 펼쳐냈다.

때로는 머나먼 성운의 탄생을 관측하며 우주의 근본적인 법칙을 탐구했고, 때로는 아직 불안정한 차원의 경계선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균열의 징후를 감지하고 QSN을 통해 조용히 안정화시켰다. 그녀의 힘은 이제 파괴적인 현실 조작이 아닌, 섬세한 조율과 보호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그녀는 우주의 미세한 파동들을 조화롭게 이끌려 애썼다.

그녀는 더 이상 인간적인 슬픔이나 기쁨의 격랑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런 감정들은 이제 그녀에게 너무 멀고 희미한 파도 소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잊지 않았다. 이 평화가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

문득, 그녀의 의식 표면 위로 희미한 잔상들이 떠올랐다. 아버지 에단의 마지막 미소. 올리비아의 용감했던 눈빛. 엘라나의 희미해져 가는 마지막 속삭임. 머서 교수의 따뜻했던 격려. 할로우 국장의 비장한 뒷모습. 그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희생이 지금 그녀가 걷고 있는 이 길의 초석이었다. 그 기억들은 더 이상 날카로운 고통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존재 깊숙한 곳에 새겨진 영원한 별처럼, 그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혀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존재감은 이제 의식 깊은 곳의 희미한 메아리, 혹은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처럼 남아있었다. 그의 과학적 통찰력과 분석력은 QSN 시스템의 알고리즘 속에, 그리고 그녀가 내리는 모든 결정 속에 녹아 있었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사라졌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녀와 영원히 함께하고 있었다.

릴리는 관측실의 거대한 창 너머,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저 별들 너머 어딘가에는 아직 레이셀의 잔당이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코바치의 배후였던 미라 웰스의 세력이 다시 움직일 수도 있었다. 에크릴의 침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었다. 평화는 여전히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과 같았다.

하지만 릴리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이 피로 얼룩진 우주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진, 고독하지만 찬란한 새로운 희망의 필획이었다.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녀는 오늘도 자신의 모든 의지를 담아 우주를 관측하고, 렌더링하며, 조심스럽게 다음 시대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혼자서, 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