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네커의 분노,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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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17일

칸토르가 ‘알레프 널(ℵ₀)’과 ‘연속체의 농도(c)’, 그리고 ‘연속체 가설(c = ℵ₁)’과 같은 혁명적인 개념들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자, 수학계는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시끄러워졌다. 그의 아이디어는 너무나 대담하고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경탄했지만, 더 많은 이들은 의심과 불신, 심지어 적대감까지 드러냈다.

그리고 그 불신의 선봉에는 어김없이 레오폴트 크로네커가 서 있었다.

베를린 대학의 한 강의실, 크로네커는 칸토르의 최신 논문을 손에 들고 격앙된 목소리로 학생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평소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여러분, 이 논문을 보시오! 게오르크 칸토르라는 자가 또다시 해괴망측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소! 무슨 알레프니, 초한기수니 하는 것들로 수학의 신성한 전당을 더럽히려 하고 있단 말이오!”

그의 손에 들린 논문은 칸토르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무한집합의 크기를 비교하는 방법, ℵ₀의 정의, 대각선 논법을 통한 실수의 셀 수 없음 증명, 그리고 연속체 가설에 대한 그의 믿음까지 담겨 있었다. 칸토르에게는 평생의 역작이었지만, 크로네커에게는 수학에 대한 모독 그 자체였다.

“보시오! 그는 ‘실제 완성된 무한’이라는 유령을 만들어내고, 그 유령들 사이에 크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소! 심지어 그 크기들에 이름을 붙이고 순서를 매기려 하고 있단 말이오! ℵ₀ 다음에는 ℵ₁이 온다? 이것이 과연 수학이란 말인가!”

크로네커는 논문의 한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창조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소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수학이 아니라 신학이 아닌가! 칸토르는 수학자의 탈을 쓴 신비주의자에 불과해!”

그의 분노는 단순한 학문적 견해 차이를 넘어선 것이었다. 크로네커는 칸토르의 연구가 수학의 근본을 위협하고, 젊은 학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수학을 병들게 하는 안개’이자 ‘사이비 철학’이라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총동원하여 칸토르의 연구를 폄하하고, 그의 논문이 중요한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을 방해하려 했다.

당시 학술지의 편집장은 종종 저명한 교수들이 맡았는데, 크로네커는 자신이 관여하는 학술지에서 칸토르의 논문 게재를 노골적으로 지연시키거나 거부했다. 그는 심지어 칸토르를 개인적으로 비방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칸토르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소! 그는 수학계의 변절자요!”

이러한 크로네커의 맹렬한 공격은 칸토르에게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정당하고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굳게 믿었지만, 존경했던 스승이자 학계의 거두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냉대는 그의 예민한 정신을 좀먹어 들어갔다.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던 ‘연속체 가설’이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자, 그의 좌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려도 풀리지 않는 문제,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학계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그는 점점 더 깊은 고립감에 빠져들었다.

데데킨트와 같은 소수의 친구들이 그를 지지하고 격려했지만, 크로네커의 영향력은 너무나 막강했다. 칸토르는 할레 대학의 교수였지만, 베를린과 같은 중심 학계로 진출하려는 그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크로네커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는 그저 진리를 추구하고 있을 뿐인데… 왜 나를 이단아 취급하는 것인가…”
칸토르는 종종 깊은 우울감에 잠겼다. 그의 열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성격은 이러한 부당한 대우에 더욱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외로웠다.

크로네커의 분노는 단순히 한 개인의 감정 표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수학계의 주류를 이루던 유한주의적, 구성주의적 관점과 칸토르가 제시한 혁명적인 실제무한론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수학의 기초와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대립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칸토르는 이 거대한 폭풍 속에서 홀로 맞서 싸워야 했다. 그의 손에는 ‘집합론’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지도가 들려 있었지만, 그 지도를 따라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그의 정신은 점차 지쳐갔고, 무한의 세계를 탐험하던 그의 빛나던 눈빛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내부에서는 여전히 무한에 대한 탐구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