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수학자 대회, 희미한 인정의 빛
제23화
발행일: 2025년 06월 24일
칸토르의 혁명적인 이론들은 독일 내에서는 여전히 크로네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종종 ‘논란 많은 수학자’ 혹은 심지어 ‘정신 나간 이론가’라는 꼬리표와 함께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조금씩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수학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소수이지만 그의 이론의 중요성을 간파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스웨덴의 저명한 수학자 괴스타 미타그레플러(Gösta Mittag-Leffler)였다. 미타그레플러는 바이어슈트라스의 제자이기도 했으며, 당시 유럽 수학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칸토르의 초기 논문들을 접하고 그 안에 담긴 독창성과 깊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칸토르가 제시한 ‘집합’이라는 개념과 ‘초한수’ 이론이 수학의 기초를 뒤흔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꿰뚫어 보았다.
미타그레플러는 자신이 창간한 세계적인 수학 학술지 ‘악타 마테마티카(Acta Mathematica)’에 칸토르의 논문들을 적극적으로 게재하며 그의 연구를 세상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은 크로네커의 방해로 인해 독일 내에서 논문 발표에 어려움을 겪던 칸토르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칸토르 선생, 선생의 연구는 실로 시대를 앞서가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많은 오해와 비판에 직면하고 있지만, 저는 선생의 이론이 미래 수학의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미타그레플러는 칸토르에게 따뜻한 격려의 편지를 보내며 그의 연구를 지지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지지자들의 등장은 칸토르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제1회 국제 수학자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ICM)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전 세계 수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연구를 발표하고 교류하는 역사적인 행사였다. 칸토르 역시 이 중요한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이론을 국제적인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혹시 이곳에서도 크로네커와 같은 반대자들의 공격에 직면하게 되지는 않을까? 자신의 난해한 이론을 과연 얼마나 많은 수학자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까?
대회장에 들어선 칸토르는 다양한 국적의 수학자들로 가득 찬 열기를 느꼈다. 그의 발표 순서가 다가오자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그는 ‘초한수의 이론’에 대해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ℵ₀, ω, 그리고 무한의 계층구조.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일 터였다.
그의 발표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무한의 세계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때로는 복잡한 기호들이 칠판을 가득 메웠지만, 그의 눈빛에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담겨 있었다.
발표가 끝났을 때, 장내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칸토르는 숨을 죽이고 청중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때, 몇몇 수학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 박수는 점차 커져갔다. 모든 참석자가 그의 이론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독창성과 학문적 용기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경의를 표하는 듯했다.
특히 프랑스의 젊은 수학자 자크 아다마르(Jacques Hadamard)와 에밀 보렐(Émile Borel) 등은 칸토르의 이론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그와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은 비록 칸토르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집합론이 가진 혁명적인 잠재력을 인정했다.
이 대회에서 칸토르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크로네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국제적인 수학계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비록 완전한 이해와 수용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의 이론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연구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희미한 신호였다.
독일 내에서의 고립감에 지쳐가던 칸토르에게, 이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의 경험은 작지만 소중한 ‘인정의 빛’이었다.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멀리서 깜빡이는 등대 불빛과도 같았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했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가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희미한 인정의 빛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고독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연속체 가설’이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산을 넘으려는 그의 처절한 노력은 또다시 그의 정신을 극한으로 몰고 갈 터였다. 인정의 기쁨은 잠시였고, 고뇌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