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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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30일

칸토르가 자신의 이론 속에 숨겨진 역설들과 씨름하며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던 무렵, 영국의 유서 깊은 학문의 전당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젊고 야심찬 한 천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훗날 20세기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될 이 젊은이는 당시 수학과 철학, 그리고 논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지적 탐험에 나서고 있었다.

러셀은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지적 능력을 드러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관심은 단순한 계산이나 문제 해결을 넘어 수학의 근본적인 기초와 논리적 구조를 파헤치는 데 있었다. 그는 수학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가장 확실한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다듬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

1900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 철학 학회. 이 학회는 젊은 러셀에게 운명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주세페 페아노(Giuseppe Peano)와 그의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페아노는 당시 수학의 공리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수학적 명제들을 엄밀한 논리 기호로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러셀은 페아노의 작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페아노의 논리 기호 체계가 자신이 추구하던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확립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학회가 끝난 후, 러셀은 페아노의 저작들을 탐독하며 그의 논리학 시스템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러셀은 자연스럽게 게오르크 칸토르의 집합론과 마주치게 되었다. 칸토르의 이론은 당시까지도 영국 학계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페아노와 같은 대륙의 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중요한 연구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었다.

러셀은 칸토르의 집합론, 특히 초한수와 무한의 계층에 대한 아이디어에 즉시 매료되었다. 그는 칸토르의 이론이 가진 혁명적인 잠재력을 간파했다. 칸토르가 제시한 ‘집합’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수학의 모든 대상을 담을 수 있는 보편적인 그릇이며, 이를 통해 수학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논리적 체계 위에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칸토르의 업적은 실로 경이롭다! 그는 우리에게 무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집합론은 수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러셀은 칸토르의 이론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칸토르의 저작들을 깊이 연구하며 그의 아이디어들을 자신의 논리학적 틀 안에서 재해석하려 했다. 그에게 칸토르의 집합론은 단순한 수학 이론을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자 철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도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러셀의 예리한 분석력은 칸토르 이론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미묘한 문제점들까지도 간파해냈다. 그는 이미 알려진 부랄리포르티 역설이나 칸토어 자신의 역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문제가 칸토르의 ‘소박한 집합론’의 핵심에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칸토르의 집합론은 ‘어떤 조건이든 만족하는 대상들의 모임은 집합이다’라는 매우 자유로운 원리에 기반하고 있었다. 러셀은 바로 이 ‘무제한적인 집합 생성 원리’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원리가 허용하는 한, 역설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고 보았다.

젊은 러셀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만약 칸토르의 집합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어 수학의 기초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그는 마치 노련한 사냥꾼처럼 칸토르 이론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려 했다.

그의 탐구는 곧 수학의 역사를 뒤흔들 만한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되었다. 그 질문은 너무나 단순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칸토르의 제국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는 파괴력이 숨겨져 있었다.

“스스로를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은 과연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러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칸토르의 ‘소박한 집합론’이 가진 모순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형태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의 손에는 이제 부랄리포르티나 칸토르 자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역설의 씨앗이 쥐어져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 칸토르의 위대한 계승자가 될 수도 있었던 이 젊은 천재는, 역설적이게도 칸토르의 이론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인물이 될 운명이었다. 그의 등장은 집합론의 역사, 나아가 수학 전체의 역사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올 전조였다. 칸토르가 열었던 무한의 낙원은 이제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