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집합’을 ‘그릇’으로, ‘원소’를 ‘내용물’로 비유하며 집합론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 ‘그릇’ 안에 담긴 내용물의 ‘개수’, 즉 집합의 ‘크기(농도)’를 비교하는 문제로 넘어가 보자. 특히 그 내용물이 ‘무한히’ 많을 때, 칸토르는 어떻게 그 크기를 비교했을까?
칸토르의 핵심 아이디어는 ‘일대일 대응’이었다. 두 집합의 원소들을 하나씩, 빠짐없이, 중복 없이 짝지을 수 있다면 두 집합은 같은 크기를 가진다고 정의했다. 이것은 유한한 세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무한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직관을 완전히 뒤엎는 놀라운 결과들을 가져왔다.
이 ‘셀 수 있는 무한(ℵ₀)’의 기묘한 성질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비유가 바로 다비트 힐베르트가 제시한 ‘무한 호텔(Hilbert's Hotel)’ 이야기이다.
상상해보자. 여기 무한개의 방을 가진 아주 특별한 호텔이 있다. 각 방에는 1호실, 2호실, 3호실, ... 이렇게 자연수 번호가 끝없이 매겨져 있다. 그리고 오늘 밤, 공교롭게도 이 무한 호텔의 모든 방에는 이미 손님이 꽉 들어차 있다. 빈 방이 하나도 없는 만실 상태인 것이다!
이때, 새로운 손님 한 명이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 지배인은 과연 이 새로운 손님에게 방을 내어줄 수 있을까? 유한한 개수의 방을 가진 일반적인 호텔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하다. 빈 방이 없으니까.
그러나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에서는 가능하다! 지배인은 다음과 같이 안내 방송을 한다.
“현재 1호실에 계신 손님은 2호실로, 2호실에 계신 손님은 3호실로, 3호실에 계신 손님은 4호실로… 이렇게 현재 계신 방 번호에 1을 더한 번호의 방으로 모두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기존 손님들이 한 칸씩 옆방으로 이동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1호실이 비게 된다! (원래 1호실 손님은 2호실로, 2호실 손님은 3호실로… 이렇게 연쇄적으로 이동했으므로). 이제 새로운 손님은 이 비어있는 1호실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 방이 꽉 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손님을 성공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호텔이 ‘무한한’ 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방의 개수가 자연수의 집합과 같은 크기, ℵ₀를 가지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ℵ₀ + 1 = ℵ₀ 라는, 유한한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한의 덧셈 결과이다.
더 놀라운 상황을 상상해보자. 이번에는 무한히 많은 새로운 손님들이 버스를 타고 한꺼번에 호텔에 도착했다! 이 버스에 탄 손님들도 첫 번째 손님, 두 번째 손님, 세 번째 손님, ... 이렇게 자연수 번호로 셀 수 있는 무한명의 손님들이다. 과연 이 모든 새로운 손님들을 이미 만실인 무한 호텔에 다 수용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또한 가능하다! 호텔 지배인은 다시 한번 기발한 안내 방송을 한다.
“현재 1호실에 계신 손님은 2호실로, 2호실에 계신 손님은 4호실로, 3호실에 계신 손님은 6호실로… 이렇게 현재 계신 방 번호에 2를 곱한 번호의 방, 즉 짝수 번호 방으로 모두 옮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기존 손님들이 짝수 번호 방으로 이동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호텔의 모든 홀수 번호 방(1호실, 3호실, 5호실, ...)이 전부 비게 된다! 이 비어있는 홀수 번호 방들은 셀 수 없이 많은(정확히는 ℵ₀개의) 방들이다. 이제 버스를 타고 온 무한명의 새로운 손님들은 이 비어있는 홀수 번호 방들에 차례로 들어가면 된다. 첫 번째 새 손님은 1호실, 두 번째 새 손님은 3호실, n번째 새 손님은 (2n-1)호실에.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ℵ₀ + ℵ₀ = ℵ₀ 라는, 더욱더 기묘한 무한의 덧셈 결과이다! (기존 손님 ℵ₀명 + 새로운 손님 ℵ₀명 = 여전히 ℵ₀명 규모의 호텔에 다 수용 가능)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 이야기는 칸토르가 발견한 ‘셀 수 있는 무한’의 역설적인 성질, 특히 ‘부분이 전체와 크기가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자연수의 집합(전체)과 짝수의 집합(부분)이 같은 크기(ℵ₀)를 가진다는 칸토르의 발견은, 바로 무한 호텔에서 기존 손님들을 모두 짝수 방으로 옮기고 홀수 방을 비워 새로운 손님들을 받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처럼 ℵ₀는 매우 ‘유연한’ 무한이다. 자기 자신과 더하거나 곱해도 그 크기가 변하지 않는, 마치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은 성질을 지닌다.
그러나 모든 무한이 다 이렇지는 않다. 칸토르는 대각선 논법을 통해 실수의 집합은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이 불가능한, 즉 ℵ₀보다 ‘더 큰’ 무한임을 증명했다. 만약 힐베르트의 호텔에 ‘실수만큼 많은’ 새로운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지배인은 아무리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내도 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호텔 방은 ‘셀 수 있는’ 무한개인데, 손님은 ‘셀 수 없는’ 무한명이니 말이다.
칸토르의 집합론은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유한한 세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무한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힐베르트의 호텔은 그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유쾌한 이정표와도 같다. 다음 시간에는 이 ‘셀 수 있는 무한’과 ‘셀 수 없는 무한’의 차이를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며, 칸토르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무한의 계층’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그의 여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