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가 남긴 질문
제1화
발행일: 2025년 08월 02일
1930년 2월, 셔본 스쿨(Sherborne School)의 공기는 유독 차가웠다. 그러나 앨런 튜링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 것은 겨울의 냉기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세계는 단 한 사람, 크리스토퍼 모컴을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두 소년에게 과학은 종교와도 같았다. 낡은 교실 구석에서 몰래 화학 실험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상대성 이론을 논했다. 다른 아이들이 라틴어 문법에 머리를 싸맬 때, 그들은 아인슈타인의 우주가 뉴턴의 우주와 어떻게 다른지,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이 현실 세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뜨겁게 토론했다.
크리스토퍼는 튜링의 유일한 지적 동반자이자, 그의 어눌한 말투와 기이한 행동을 이해해 주는 단 한 명의 친구였다. 튜링에게 크리스토퍼는 단순한 친구 그 이상이었다. 그는 튜링 자신이 되고 싶었던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함께 케임브리지에 진학해 세상을 놀라게 할 연구를 하자던 약속. 그것은 튜링의 미래를 비추는 등대였다.
한 통의 편지가 모든 것을 끝냈다.
“크리스토퍼 모컴. 소아 결핵성 우유를 마신 뒤 급성 합병증으로 사망.”
앨런의 세계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청천벽력이란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의 논리 회로가,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이 완전히 정지해버렸다. 죽음. 그것은 어떤 방정식으로도 풀 수 없는 부조리한 변수였다.
며칠간, 그는 방 안에 틀어박혀 크리스토퍼의 어머니인 모컴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 슬픔을 나누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필사적인 탐구였다.
「저는 크리스토퍼와 과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정신(spirit)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편지지에 잉크를 적시며 튜링의 머릿속은 광적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신(spirit).’
‘정신(mind).’
크리스토퍼의 육체는 사라졌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를 크리스토퍼이게 했던 그 모든 것. 그의 총명함, 재치 있는 유머, 별을 향한 동경, 복잡한 수학 공식을 순식간에 꿰뚫어 보던 그 빛나는 지성. 그것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그의 질문은 신학적인 영역에서 과학적인 영역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정신이란 무엇인가?’
모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차마 담지 못한 질문들이 그의 뇌리를 잠식했다.
‘크리스토퍼의 생각은, 그의 의식은, 그를 움직이게 한 그 지능은… 물질적인 현상인가? 아니라면, 비물질적인 정신이 어떻게 물질적인 뇌와 상호작용할 수 있었던 거지?’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신경 신호가 근육을 움직여 펜을 쥐게 한다. 이 물리적인 과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펜을 쥐어야겠다’는 그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뇌. 고작 1.4킬로그램짜리 회백질 덩어리. 이 물리적인 조직에서 어떻게 ‘나’라는 감각과 ‘생각’이라는 비물리적인 현상이 발생하는가?’
슬픔은 어느새 거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변이하고 있었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지독한 고통이 역설적으로 그의 인생을 관통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벼려낸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크리스토퍼 한 사람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이었다.
튜링은 창밖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았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겨울 풍경 속에서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움직였다.
알아내야만 했다.
만약 정신이 뇌라는 기계의 작동 원리라면, 그 원리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이라는 과정을 해부하고, 그 구조를 낱낱이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기계 위에서 그 ‘정신’을 재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크리스토퍼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
크리스토퍼가 남긴 마지막 질문.
그것은 18세 소년 앨런 튜링이라는 한 천재의 평생을 지배할 운명적인 화두가 되었다. 계산과 지능에 대한 위대하고도 고독한 탐구의 첫 페이지가, 그렇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