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월 7일.
그날 아침, 튜링의 집은 유난히 고요했다.
가정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늘 일찍 일어나 연구에 몰두하던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열었다.
앨런 튜링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지만,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그의 나이 마흔한 살이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한 입 베어 문 사과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방 안에서는 희미하게, 아몬드 같은 냄새가 났다. 청산가리(시안화칼륨) 특유의 냄새였다.
경찰의 조사는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부검 결과, 그의 사인은 급성 시안화물 중독이었다. 경찰은 현장 상황과 그의 최근 심경을 고려하여, 그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 내렸다.
공식적인 설명은 이러했다.
튜링이 자신의 작은 실험실에서 전기 도금 실험을 할 때 사용하던 청산가리를 사과에 주입한 뒤, 그것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조용히 처리되었다.
지역 신문에 작은 부고 기사가 실렸을 뿐, 세상은 그의 죽음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전쟁 영웅,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인공지능의 선구자. 그 어떤 수식어도 그의 죽음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불명예스러운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자이자, 스스로 삶을 마감한 한 수학자로 기억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남아 있었다.
그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까운 이들은 자살이라는 결론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튜링이 죽기 며칠 전까지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새로운 연구 주제에 흥미를 보였고, 다음 주에 할 일 목록을 책상 위에 적어두었다. 그의 행동 어디에서도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고사.’
튜링은 실험실에서 청산가리를 다루는 부주의한 습관이 있었다. 그는 종종 실험을 하다가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곤 했다. 그날도 실험 후 무심코 사과를 집어 들었다가, 손에 묻어 있던 치사량의 독극물을 섭취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그가 베어 문 사과 자체에서는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암살.’
튜링은 영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 기밀을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다. 냉전이 심화되던 시기, 그의 동성애는 여전히 정부에게 불안 요소였다.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그가, 언젠가 소련의 협박에 넘어가 비밀을 누설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우려. 그래서 정보기관이 사고로 위장하여 그를 제거한 것이 아니냐는 섬뜩한 추측이었다.
자살인가, 사고인가, 혹은 암살인가.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한 입 베어 문 사과.
그것은 마치 그가 가장 좋아했던 동화, ‘백설 공주’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영원한 잠에 빠진 공주처럼.
어쩌면 그의 죽음은 그 모든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편견이라는 독, 화학적 거세가 가져온 절망이라는 독, 그리고 국가 기밀이라는 위험한 짐이 스며든 사과. 그는 그 모든 독이 든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마침내 길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계산을 멈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질문은 남았다.
그의 마지막 노트는 덮였다. 하지만 그 노트가 시작했던 이야기는, 이제 막 진짜 서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 튜링이라는 위대한 하드웨어는 작동을 멈췄지만, 그가 남긴 프로그램은 이제부터 인류의 미래라는 새로운 기계 위에서 실행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