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 무너지는 천재

482025년 08월 25일3

앨런 튜링의 이름은 법정에서 불렸다.
죄명은 ‘중대한 외설 행위’. 1885년에 제정된, 오스카 와일드를 감옥으로 보냈던 바로 그 법률이었다.

그는 변호사의 조언을 무시하고, 모든 혐의를 담담하게 인정했다. 그의 논리적인 세계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며, 따라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은 논리가 아니었다. 법은 그 시대의 편견과 도덕률을 반영하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튜링의 정직함은 법정에서 미덕이 아니라, 유죄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1952년 3월 31일,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다.
2년의 징역형, 혹은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한 ‘장기 요법’을 받을 것.

그 ‘장기 요법’의 정체는 사실상의 ‘화학적 거세’였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주기적으로 주사하여, 남성의 성적 충동을 화학적으로 억제하는 치료법이었다.

튜링은 감옥을 선택할 수 없었다.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그의 연구가, 그의 삶이 완전히 정지됨을 의미했다. 그는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위해, 굴욕적인 두 번째 선택을 받아들였다.

치료가 시작되자, 그의 몸과 정신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주사된 에스트로겐은 그의 신체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여성형 유방증이 나타났고, 체지방이 늘어났다. 한때 케임 강변을 달리던 마라토너의 날렵한 몸은 사라졌다.

더 끔찍한 것은 정신적인 변화였다.
호르몬의 불균형은 그의 예리했던 집중력을 흩트려 놓았다. 그는 복잡한 수학 문제에 예전처럼 몰입하기 힘들었고, 아이디어를 명료하게 전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총명함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처럼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사회적 낙인이었다.
유죄 판결로 인해, 그는 ‘성범죄자’가 되었다.
영국 정부는 더 이상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의 보안 등급은 즉시 박탈되었다. 이는 그가 블레츨리 파크의 후신인 정부통신본부(GCHQ)의 어떤 자문 역할에서도 배제됨을 의미했다.

한때 국가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다루었던 영웅은, 이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잠재적 위험인물로 분류되었다. 동성애자는 소련 스파이들의 협박에 취약하다는 것이 당시 정보기관의 논리였다.

그는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집 주변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었고, 그의 동료들은 그와의 교류를 꺼리기 시작했다. 맨체스터 대학의 연구실은 더 이상 그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다. 그는 동료들의 동정 어린 시선과 수군거림 속에서 고립되어 갔다.

한때 그를 존경했던 이들은 그를 피했고, 그의 지적인 세계는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그는 더 이상 해외 학회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성적 도착자’의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는 그의 집과 연구실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 갇혀버렸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의 두뇌, 컴퓨터 과학의 문을 열었던 그의 정신, 생명의 비밀에 다가서던 그의 지성은, 이제 사회의 편견과 화학 물질에 의해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노트에 끄적였다.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
이제 그 질문은 그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기계는 편견을 가질 수 있는가? 기계는 비논리적인 믿음으로 동족을 파괴할 수 있는가?

그는 무너지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이었던 천재가, 세상의 가장 비논리적인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스러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