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에 도착한 충격적인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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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8월 05일

그 소식은 갑작스럽게 도착했다. 마치 먼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의 해일이 예고 없이 해안을 덮치듯, 조용했던 케임브리지의 학계를 뒤흔들었다.

맥스 뉴먼 교수는 그날따라 유독 침통한 얼굴로 강의실에 들어섰다. 그는 분필을 잡는 대신, 교탁을 양손으로 굳게 짚었다. 학생들은 그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저절로 자세를 바로 했다.

“여러분.”

뉴먼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 우리는 한 시대의 종언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강의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비트 힐베르트의 위대한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완전성’의 원칙을 기억할 겁니다. ‘모든 참인 명제는 증명 가능하다’는 믿음 말입니다.”

뉴먼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강의실 전체를 얼어붙게 했다.

“그 믿음이… 깨졌습니다.”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깨지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가 감히 힐베르트의 공리를 반박한단 말입니까?”

뉴먼이 손을 들어 소란을 잠재웠다.
“오스트리아 빈의 젊은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우리의 수학 체계가 충분히 강력하다면, 그 안에는 반드시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함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냈습니다.”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

그 단어가 공기 중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학생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순수한 충격과 혼란이었다. 수학은 절대적인 진리의 왕국이었다. 그들에게 수학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수학의 심장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힐베르트가 세운 완벽한 성채의 벽돌 하나가 빠져나가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어왔던 세계가 실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강의실 한구석, 앨런 튜링의 마음속 풍경은 전혀 달랐다.

동료들이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뇌는 차갑고 명료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괴델의 정리가 파괴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으로 비쳤다.

‘괴델은 힐베르트의 꿈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 꿈의 ‘한계’를 수학적으로 정의했을 뿐이다.’

튜링은 깨달았다.
괴델은 ‘증명’이라는 행위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논리적 형식 체계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튜링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힐베르트 프로그램의 또 다른 기둥, ‘결정 문제(Entscheidungsproblem)’를 향하고 있었다.

‘괴델이 ‘증명 가능성’의 한계를 보였다면, 나는 ‘계산 가능성’의 한계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결정 문제의 핵심은 ‘기계적인 절차’, 즉 계산이었다.
만약 계산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내재된 한계가 존재하고, 그 한계 때문에 결코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결정 문제에 대한 완벽한 종언이 될 터였다.

다른 이들이 무너진 성벽을 보며 탄식할 때, 튜링은 그 무너진 틈 너머로 펼쳐진 새로운 길을 보고 있었다. 괴델이 뚫어놓은 그 균열은, 그에게 절망이 아니라 이정표였다.

강의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몰랐다. 튜링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껏 막연하게 느껴졌던 그의 목표가, 이제 쿠르트 괴델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비로소 뚜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였다.

괴델이 ‘증명’의 본질을 파고들어 그 한계를 밝혔듯, 자신은 ‘계산’의 본질을 파고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답해야만 한다.
“‘계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