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GL의 유산: 개방과 협력의 힘.

472025년 08월 26일3

WebGL 2.0이 주요 브라우저에 탑재되고, 웹 3D 기술이 완전히 주류로 자리 잡았을 무렵, 기술 업계의 원로들은 WebGL의 성공 사례를 분석하며 그 안에 담긴 교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견한 WebGL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을 만들어낸 ‘과정’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플랫폼 기술의 표준을 정하는 과정은 종종 한두 개의 거대 기업이 주도권을 잡고 나머지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결정되곤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X가 PC 게임 그래픽 API의 표준이 되었던 과정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WebGL은 달랐다.
그 시작은 모질라의 한 개발자, 블라디미르의 아이디어였지만, 그것이 성공적인 표준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치열하게 경쟁하는 라이벌들의 협력’이라는, 지극히 이례적인 과정 덕분이었다.

WebGL 워킹 그룹의 회의실 풍경을 다시 돌이켜보자.
그곳에는 브라우저 시장을 놓고 피 튀기게 싸우는 구글과 모질라, 그리고 애플이 있었다. GPU 시장의 패권을 다투는 엔비디아와 AMD도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비즈니스와 플랫폼, 그리고 기술적 자존심을 걸고 한 치의 양보 없는 논쟁을 벌였다.

  • 구글은 성능과 자사의 ANGLE 프로젝트의 영향력을 높이려 애썼다.
  • 애플은 보안과 안정성이라는 절대 원칙을 내세우며 API의 모든 측면을 까다롭게 검증했다.
  • 모질라는 개방성과 웹 표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양측을 중재하며 목소리를 냈다.
  •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GPU 아키텍처에 더 유리한 기능이 포함되도록 로비했다.

만약 이들 중 하나라도 자신들의 이익만을 고집하며 판을 엎었다면, WebGL 프로젝트는 좌초했을 것이다. 구글이 O3D를 밀어붙이거나, 애플이 끝까지 참여를 거부했다면, 웹 3D는 다시 파편화의 시대로 회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결국에는 ‘통일된 웹 표준’이라는 더 큰 대의를 위해 한 걸음씩 양보하고 타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브라우저나 하드웨어에만 최적화된 반쪽짜리 표준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고 이로운 기술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이익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러한 협력의 문화는 WebGL이 공식 발표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크롬팀이 발견한 드라이버 버그는 즉시 워킹 그룹에 공유되어 파이어폭스의 안정성 향상에 기여했다. 모질라가 제안한 성능 최적화 아이디어는 크롬의 렌더링 엔진에 반영되었다. 그들은 경쟁자 이전에, WebGL이라는 공동의 자산을 함께 키워나가는 동료였다.

이것은 90년대의 살벌했던 ‘브라우저 전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숙한 협력의 모델이었다.

WebGL의 성공은 한 명의 천재나 하나의 위대한 기업이 이룬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개방된 공간(크로노스 그룹)에서, 투명한 절차(워킹 그룹 회의록 공개)를 통해, 서로 다른 배경과 목표를 가진 이들이 ‘더 나은 웹’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다.

이 ‘개방과 협력의 힘’이야말로 WebGL이 후대의 기술 표준들에게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었다. 그것은 기술의 발전이 독점이 아닌 공유를 통해, 폐쇄가 아닌 개방을 통해 이루어질 때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블라디미르가 지폈던 작은 불씨는, 이제 웹 생태계 전체를 밝히는 거대한 횃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