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창조자들

302025년 08월 17일4

출시의 광풍이 지나간 연구실은 다시 일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일상은 예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드미트리와 팀원들의 주된 업무는 더 이상 새로운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만들어 세상에 풀어놓은 강력한 도구를, 새로운 창조자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지켜보는 관찰자이자 지원군이 되었다.

드미트리는 매일 아침, 개발자 커뮤니티와 깃허브를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곳은 이제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창의력으로 들끓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 물리학자가 올린 유체 시뮬레이션 데모였다.
화면 속에서 수십만 개의 입자가 서로 상호작용하며 실제 물처럼 부드럽게 출렁이고, 장애물에 부딪혀 흩어졌다. 각 입자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렌더링하는 이 엄청난 연산은 WebGL로는 실시간 처리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WebGPU의 컴퓨트 셰이더는 이 모든 것을 브라우저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댓글 창에는 경탄이 가득했다.
“이게 웹이라고?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과 구분이 안 된다.”
“서버 없이 클라이언트 사이드에서 이 정도의 물리 연산이 가능하다니…”

팀원들은 이 데모를 서로 공유하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이 설계한 컴퓨트 파이프라인이 그래픽을 넘어, 과학 시뮬레이션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모질라가 파이어폭스 나이틀리(Nightly) 버전에 WebGPU를 기본 활성화하기 시작했다는 뉴스였다. 애플 역시 사파리 테크놀로지 프리뷰(Safari Technology Preview)에서 WebGPU 지원을 꾸준히 개선하고 있었다.

크롬의 출시는 독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생태계 전체를 움직이는 신호탄이었다. 이제 개발자들은 WebGPU가 특정 브라우저만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현대 브라우저가 나아갈 미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드미트리의 심장을 가장 강렬하게 뛰게 한 것은 한 무명의 AI 연구자가 올린 블로그 포스트였다.

“llama.cpp를 WebGPU로 구동하기: 브라우저에서 거대 언어 모델(LLM)을 실행하다.”

드미트리는 눈을 의심하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 연구자는 C++로 작성된 유명 LLM 추론 엔진인 llama.cpp를 웹어셈블리(WebAssembly)로 컴파일하고, 그 핵심 연산인 행렬 곱셈 부분을 WebGPU의 컴퓨트 셰이더로 대체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는 사용자의 컴퓨터에서, 어떤 데이터도 서버로 보내지 않고, 오직 브라우저의 힘만으로 수십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언어 모델을 구동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데모 페이지의 채팅창에 질문을 입력하자, 몇 초 뒤 GPU가 생성해 낸 답변이 화면에 나타났다.

글의 마지막에 연구자는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더 이상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의 서막입니다. 사용자의 데이터를 보호하면서, 강력한 AI의 힘을 웹을 통해 모두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WebGPU는 단순히 그래픽 API가 아닙니다. 이것은 웹을 위한 분산 슈퍼컴퓨팅의 첫걸음입니다.”

드미트리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가 컴퓨트 셰이더를 설계하며 막연하게 꿈꾸었던 미래. 웹 브라우저가 AI 연산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이 되는 세상. 그 미래가 지금 그의 눈앞에서, 다른 창조자의 손에 의해 현실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10여 년 전, 버벅거리던 3D 자동차 모델 앞에서 느꼈던 답답함을 떠올렸다. 그 작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여정이었다. 이제 그 결과물은 단순히 자동차를 부드럽게 돌리는 것을 넘어, 브라우저 안에서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신이 만든 도구가, 자신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플랫폼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이었다.

WebGPU의 진짜 이야기는 Dawn 팀의 손을 떠나,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새로운 창조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아무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드미트리는 그들의 경이로운 질주를,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