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산맥을 향하여

322025년 08월 18일4

WebGPU 출시 이후 몇 달, Dawn 팀은 안정화와 유지보수라는 새로운 리듬에 익숙해져 갔다. 그들은 더 이상 매일같이 사양 변경과 씨름하거나 치명적인 버그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우지 않았다. 대신 커뮤니티의 질문에 답하고, 소소한 성능 개선 작업을 하며, 자신들이 쏘아 올린 로켓이 안정적인 궤도에 머무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치 거대한 전쟁을 끝낸 군대처럼, 연구실에는 평화로운 안도감이 감돌았다.

그 평화를 깨뜨린 것은 새로운 버그 리포트가 아니었다. W3C ‘GPU for the Web’ 커뮤니티 그룹의 다음 공식 미팅을 알리는 일정 초대 메일이었다.
드미트리는 회의의 안건을 확인하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안건의 제목은 ‘Post-MVP Roadmap Discussion(MVP 이후 로드맵 논의)’이었다.

회의 당일, 원격 컨퍼런스 콜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모질라의 알렉스, 애플의 딘,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 그리고 이제는 WebGPU 생태계의 주요 플레이어가 된 바빌론JS와 Three.js의 핵심 기여자들까지.

회의의 분위기는 1, 2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생존을 위해 싸우던 치열함 대신, 성공적인 첫 단계를 마친 동지들 간의 차분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한 게임 엔진 개발사 소속의 엔지니어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WebGPU 1.0은 환상적입니다. 저희는 이미 차세대 웹 렌더러의 기반으로 WebGPU를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눈은 이미 그 다음을 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메시 셰이더(Mesh Shaders) 지원은 언제쯤 구체화될 수 있을까요?”

그의 질문에 회의장은 조용히 술렁였다. 메시 셰이더. 그것은 MVP를 논의할 때 과감하게 뒤로 미뤄두었던, 미래의 기술이었다. 수많은 객체를 CPU의 개입 없이 GPU가 스스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이 기술은, 차세대 게임 그래픽의 핵심 중 하나였다.

드미트리가 마이크를 켜고 대답했다.
“훌륭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기술적으로, Dawn이나 wgpu에 메시 셰이더 지원을 추가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표준’입니다.”

그는 화면에 W3C의 표준화 절차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을 띄웠다.
“우리가 어떤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참여자가 동의하는 명확한 API 사양을 문서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양이 모든 주요 플랫폼—Vulkan, Metal, DirectX 12—에서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죠. 이것은 몇 주가 아니라, 몇 달, 혹은 1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는 과정입니다.”

그의 말은 섣부른 기대를 경계하는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WebGPU는 한 회사가 독단적으로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독점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모든 걸음은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

모질라의 알렉스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하드웨어의 보편성입니다. 메시 셰이더는 아직 최신 세대의 GPU에서만 지원되는 기능입니다. 웹은 보편적인 접근성을 지향합니다. 만약 우리가 메시 셰이더를 WebGPU의 핵심 기능으로 성급하게 편입시킨다면, 구형 기기를 사용하는 수많은 사용자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면서도, 웹의 보편성이라는 가치를 지킬 것인가?
이것이 WebGPU 2.0 시대를 여는 첫 번째 화두였다.

논의 끝에 커뮤니티는 하나의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새로운 기능들은 처음부터 핵심 사양에 포함하는 대신, ‘선택적 확장 기능(Optional Extension)’으로 먼저 도입하는 것이다. 개발자는 사용자의 GPU가 해당 기능을 지원하는지 먼저 확인하고, 지원하는 경우에만 선택적으로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 이 확장 기능이 충분히 안정화되고 하드웨어 지원이 보편화되면, 그때 가서야 다음 버전의 핵심 사양으로 승격시키는 점진적인 접근법.

회의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메시 셰이더, 레이 트레이싱 지원을 위한 초기 논의, 비디오 코덱 직접 제어 기능, 다중 GPU 지원… 화이트보드에는 WebGPU의 미래를 채울 수많은 가능성들이 나열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드미트리는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Dawn 프로젝트의 내부 위키 페이지를 열고, 새로운 문서를 생성했다.

페이지 제목: WebGPU - Beyond 1.0

그는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기 위한 작업 목록이 아니었다. 웹이라는 플랫폼 자체를 앞으로 10년간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거대한 청사진이었다.

WebGPU 1.0이라는 첫 번째 산을 넘자,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이 오른 것은 하나의 독립된 봉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의 앞에는 또 다른, 훨씬 더 높은 산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그 첫걸음을 내디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진짜 여정은 이제 막 다시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