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너머의 교향곡

502025년 08월 27일4

육아휴직이 끝나고, 드미트리는 다시 구글 캠퍼스로 돌아왔다. 그의 책상은 그대로였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이제 코드의 효율성이나 API의 우아함 너머에 있는, 자신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복귀 후 첫 공식 일정은, 그가 이끌었던 WebGPU 출시 프로젝트에 대한 사후 회고 미팅이었다. 회의실에는 보안, QA, 출시 관리, 개발자 관계 등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든 팀의 리더들이 모여 있었다. 이것은 성공을 자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잘못됐으며,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자리였다.

메이슨 이사가 회의를 시작했다.
“WebGPU는 성공적으로 출시되었고,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특히 출시 직전에 발견된 P0 보안 이슈는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화면에는 프로젝트의 타임라인이 펼쳐졌다. 초기 제안부터 사양 논의, 구현, 오리진 트라이얼, 그리고 아슬아슬했던 마지막 48시간까지. 지난 몇 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보안팀 리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조금 더 일찍 프로젝트에 개입했더라면, 보안 취약점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다음부터는 새로운 저수준 API를 개발할 때, 초기 설계 단계부터 보안 모델을 함께 검토하는 프로세스를 의무화해야 합니다.”

QA팀의 사라도 의견을 보탰다.
“모바일 파편화 테스트는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소수의 플래그십 기기만으로 테스트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실제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수십, 수백 종류의 중저가 기기를 아우를 수 있는 자동화된 테스트 인프라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개발자 관계팀의 리아나는 에러 메시지 사건을 언급했다.
“개발자 경험(DX)은 부가 기능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핵심 성공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API를 설계할 때부터, ‘이 API를 처음 쓰는 개발자는 어떤 실수를 할까?’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각 팀의 리더들은 솔직하고 가감 없이 자신들의 부족했던 점을 이야기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그곳에는 변명이나 남 탓이 없었다. 오직 더 나은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만이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메이슨의 시선이 드미트리에게 향했다.
“드미트리, 엔지니어링 팀을 대표해서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성공 요인과 가장 큰 교훈을 하나씩만 꼽아준다면요?”

드미트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많은 얼굴과 순간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구글 혼자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우리는 지금의 결과물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겁니다. 모질라의 wgpu가 우리의 실수를 바로잡아 주었고, 애플의 경쟁심이 우리의 잠재력을 끌어냈으며, 바빌론JS와 같은 커뮤니티의 현실적인 피드백이 우리의 방향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었습니다. WebGPU의 성공은 한 회사의 승리가 아니라, 개방적인 표준과 협력이라는 웹 생태계 자체의 승리입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교훈은… 우리가 만드는 것은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회의실에 앉아있는 모두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는 제가 훌륭한 C++ 엔진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안팀이 없었다면 그 엔진은 끔찍한 무기가 되었을 겁니다. QA팀이 없었다면 수많은 사용자들의 기기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을 거고요. 개발자 관계팀이 없었다면 개발자들은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조율하는 출시 관리팀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연구실 안의 실험으로만 남았을 겁니다.”

“WebGPU는 Dawn이라는 엔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안 정책, 테스트 케이스, 공식 문서, 그리고 출시 전략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교향곡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다른 악기를 연주하며, 그 교향곡을 함께 완성한 연주자들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내 메이슨 이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아주 훌륭한 회고군요, 드미트리. 그 교훈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얻은 가장 값진 자산일 겁니다.”

미팅이 끝나고 복도를 걸어 나오며, 드미트리는 비로소 자신이 이끌었던 거대한 프로젝트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코드의 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그는 이제 기술과 사람, 그리고 프로세스가 어떻게 어우러져 하나의 위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아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진 리더로 성장해 있었다. 그의 여정 1부가, 비로소 진정한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