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 위의 코드

652025년 09월 04일4

사용자에게 GPU 사용의 투명성을 제공하자는 논의가 무르익어갈 무렵, 드미트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W3C나 UX팀의 회의실이 아닌, 차갑고 엄숙한 법원의 서면 질의서 형태였다.

한 대형 특허 괴물(Patent Troll) 회사가, 구글을 포함한 주요 기술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의 내용은 ‘실시간 셰이더 컴파일 및 실행과 관련된 특정 기술’에 대한 특허 침해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특허의 권리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했지만, WebGPU의 핵심 동작 방식과 교묘하게 겹쳐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 소식은 Dawn 팀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구글의 법무팀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다.
“드미트리, WebGPU 프로젝트의 모든 설계 문서, 회의록, 이메일, 그리고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소스 코드 커밋 기록을 법적 증거로 제출해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 팀은 이번 소송의 핵심 기술 증인이 될 겁니다.”

연구실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엔지니어들에게 법적 분쟁은 미지의 영역이자, 가장 피하고 싶은 종류의 문제였다.

며칠 후, 드미트리는 구글의 특허 전문 변호사들과 함께 몇 시간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다. 변호사들은 기술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날카로운 질문으로 핵심을 꿰뚫었다.

“상대방은 자신들이 ‘동적 셰이더 생성 기술’을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WebGPU의 WGSL 셰이더 컴파일 방식이 그들의 특허와 어떻게 다른지, 기술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드미트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샌드박싱(Sandboxing)’과 ‘검증(Validation)’입니다. 그들의 특허는 신뢰할 수 있는 네이티브 환경에서, 애플리케이션이 직접 셰이더 코드를 생성하고 실행하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WebGPU는 신뢰할 수 없는 웹 환경에서, 외부의 코드를 안전하게 실행시키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우리는 WGSL 코드를 직접 GPU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엄격한 유효성 검사를 거치고, 안전성이 보장된 중간 표현(IR)으로 변환한 뒤에야 비로소 실행합니다. 이 ‘안전 계층’이야말로 우리의 기술이 그들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증거입니다.”

변호사는 그의 말을 꼼꼼히 메모하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이 ‘안전 계층’이라는 개념이 WebGPU 프로젝트 초기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 프로젝트 초기의 설계 문서나 공개적인 회의록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 드미트리는 지난 수년간 그들이 걸어왔던 길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았다.
그들은 폐쇄된 연구실에서 비밀스럽게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논의는 W3C라는 공개적인 포럼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회의록은 투명하게 공개되었고, 모든 사양 변경은 깃허브의 커밋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WGSL의 보안 모델에 대한 초기 논쟁, SPIR-V 도입에 대한 토론, 그리고 수많은 보안 관련 이슈들.

그 모든 것이, 이제 그들의 기술이 독자적이고 선의의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음을 증명하는, 무엇보다 강력한 ‘알리바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드미트리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자료는 차고 넘칩니다. 저희는 지금부터 W3C ‘GPU for the Web’ 커뮤니티 그룹의 모든 공개 기록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이 기술을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보안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수년간의 증거가 담겨 있습니다.”

그날 이후, 드미트리와 그의 팀은 법무팀을 도와 수많은 기술 자료를 정리하고,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것은 코드 한 줄 짜지 않는, 소모적이고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이 과정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개방성과 투명성은, 단순히 더 나은 기술적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가장 견고한 방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만약 그들이 폐쇄적으로, 독자적으로 WebGPU를 개발했다면, 지금쯤 그들은 특허 괴물의 주장에 맞서 자신들의 독창성을 증명하는 데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웹 표준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이름 아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기록하며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 공동체가, 그 역사가,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확신했다.
그들이 쓴 코드는, 단순히 기술의 심판대 위에서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세상의 법률과 규칙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심판대 위에서도 그 정당성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심판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그들이 걸어온 길의 진실성에서 나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