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에 빠진 광고팀
제36화
발행일: 2025년 06월 16일
GDPR이라는 태풍의 상륙 예고는 구글 광고팀 전체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더 이상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거나 경쟁사를 분석하는 여유는 없었다.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고, 오직 하나의 목표, ‘GDPR 준수’를 위한 비상 체제로 전환되었다.
사무실은 마치 재난 영화의 상황실처럼 변했다. 엔지니어, 변호사, 프로덕트 매니저, 정책 전문가들이 한데 뒤섞여 밤샘 회의를 거듭했다. 화이트보드는 더 이상 시스템 아키텍처가 아닌, GDPR 조항과 그에 해당하는 시스템의 취약점을 분석하는 매트릭스로 가득 찼다.
알렉스는 자신이 속한 DMP 팀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DMP는 본질적으로 다양한 소스에서 수집된 사용자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이터의 저수지’였다. 그리고 GDPR은 바로 그 저수지의 모든 물줄기를 문제 삼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팀을 소집하여 각자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감사(Audit)’다. 우리가 가진 모든 시스템, 모든 코드 라인, 모든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을 샅샅이 뒤져서, GDPR 규정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 부분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찾아내야 한다. 마치 우리 시스템을 해킹하려는 외부 공격자의 관점에서, 가장 취약한 고리를 찾아내는 거다.”
알렉스에게는 가장 어렵고 방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바로 ‘데이터 계보(Data Lineage)’를 추적하는 일이었다.
“알렉스, 자네는 우리 DMP에 저장된 ‘자동차 애호가’라는 세그먼트 하나를 추적해보게. 이 세그먼트 정보가 최초에 어떤 사용자의 어떤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제3자 데이터와 결합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광고 캠페인에 사용되었는지, 그 데이터의 전체 생애 주기를 역으로 추적해서 지도(Map)를 그려내야 해. 단 하나의 연결고리라도 불분명해서는 안 돼.”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다.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시스템을 거치며 변형되고 결합된 데이터의 기원을 찾는 것은, 수많은 지류가 합쳐진 거대한 강의 하류에서 특정 물 한 방울의 발원지를 찾아내는 것과 같았다.
알렉스는 며칠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코드와 로그 파일의 미로 속을 헤맸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작성했던 코드들까지 다시 들여다보며, 당시에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GDPR의 엄격한 잣대 아래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예를 들어, 그는 사용자의 IP 주소를 기반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하여 지역 타겟팅에 사용했던 모듈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합리적인 기술이었지만, GDPR 하에서 IP 주소는 개인 데이터로 간주될 수 있으며, 명시적인 동의 없이는 수집 및 처리가 금지되었다.
그는 또한, 서로 다른 파트너사로부터 받은 제3자 데이터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익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해싱(Hashing) 알고리즘이 이제는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오래된 해시값은 역으로 원본 값을 추정하는 공격에 취약해져 있었다.
그가 찾아낸 문제점들은 하나씩 ‘위험 목록(Risk List)’에 추가되었다. 목록은 하루가 다르게 길어져만 갔다. 수백, 수천 개의 잠재적 위반 사항들이 발견되었다.
팀 전체가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걸 2년 안에 다 고치는 게 가능하기는 한 겁니까?”
“이 정도면 그냥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게 빠르겠습니다.”
불만과 회의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때, 데이비드가 팀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알아. 불가능해 보인다는 거. 하지만 이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해내지 못하면, 구글의 유럽 사업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몰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의 실리콘밸리를 내다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며 일해왔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우리에게 기술의 책임에 대해 묻고 있어. 이건 위기지만, 동시에 우리의 기술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사용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기술은 결국 모래성과 같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다.”
그의 말에, 패닉에 빠져 있던 팀원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외부에서 강요된 규제가 아니었다. 자신들이 만든 기술의 철학을 바로 세우고, 더 단단한 기반 위에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해야 하는,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
알렉스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끝없이 이어진 위험 목록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그 안에는 이제 ‘반드시 해결해내고 말겠다’는 뜨거운 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