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관리 플랫폼(CMP)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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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17일

GDPR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서, 팀은 수백 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숲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GDPR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 바로 사용자의 ‘명시적 동의(Explicit Consent)’에 있었다.

데이비드는 전략 회의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우리가 개별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사용자와 만나는 최전선, 즉 웹사이트와 앱에서 ‘합법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표준화된 방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동의를 얻지 못하면, 그 뒤의 모든 데이터 처리는 불법이 되니까요.”

지금까지 동의를 구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이트는 작은 배너를 띄웠고, 어떤 사이트는 긴 개인정보 처리 방침 페이지로 링크를 걸었다. 통일된 규격도, 사용자가 자신의 선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법도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라가 말을 이었다. “사용자에게 어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누가 사용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사용자가 각 항목에 대해 개별적으로 동의하거나 거부할 수 있게 해주는 ‘동의 관리 도구’ 말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업계는 훗날 이 기술을 이렇게 불렀다.

CMP (Consent Management Platform)

동의 관리 플랫폼. 그것은 GDPR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통행증’과도 같았다.

CMP 개발팀의 리더 역할은 사라가 맡았고, 알렉스는 핵심 아키텍트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1. 투명한 정보 제공: 웹사이트나 앱에 접속한 사용자에게 팝업이나 배너 형태로 CMP를 노출시킨다. 이 창에는 ‘맞춤형 광고’, ‘사이트 분석’, ‘콘텐츠 개인화’ 등 데이터가 사용될 모든 목적이 알기 쉬운 언어로 나열되어야 한다.
  2. 세분화된 선택권: 사용자는 전체 동의 버튼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각 목적별로, 심지어 데이터를 사용할 각 공급업체(구글, 페이스북, 크리테오 등)별로 개별적인 동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3. 동의 기록 저장: 사용자의 선택은 암호화된 문자열, 즉 ‘동의 문자열(Consent String)’의 형태로 생성되어 쿠키나 기기 저장소에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이 기록은 사용자가 선택을 변경하거나 삭제를 요청할 때까지 유효하다.
  4. 생태계와의 연동: 저장된 동의 문자열은 이후 모든 광고 입찰 요청(Bid Request)에 포함되어 광고 생태계 전체에 전파되어야 한다. DSP나 SSP 같은 모든 참여자는 광고를 처리하기 전에 이 동의 문자열을 확인하고, 사용자가 동의한 범위 내에서만 데이터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알렉스는 특히 ‘동의 문자열’을 생성하고 해석하는 표준 규격을 설계하는 데 몰두했다. 그것은 0과 1로 이루어진 비트 필드를 사용하여, 수백 개의 선택 사항을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비트는 ‘맞춤형 광고 동의 여부’, 두 번째 비트는 ‘A업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나타내는 식이었다.

그는 코드를 작성하며 이 작은 문자열이 가진 엄청난 힘을 실감했다. 이 짧은 코드가 앞으로 수억 명의 유럽 사용자들의 디지털 프라이버시 권리를 보장하는 열쇠가 될 터였다. 또한, 광고 생태계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따라야 할 새로운 법규가 될 것이었다.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많은 법적 해석과 사용자 경험(UX)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모두 동의’ 버튼을 ‘모두 거부’ 버튼보다 더 눈에 띄게 만들면, 사용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다크 패턴(Dark Pattern)’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UX 디자이너가 지적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 용어 대신,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법무팀이 강조했다.

수많은 수정과 테스트를 거쳐, 마침내 구글의 첫 번째 CMP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팝업창이 아니었다. 사용자의 권리와 기업의 책임이 기술을 통해 만나는, 정교하게 설계된 계약서였다.

GDPR 시행일이 다가옴에 따라, 구글은 이 CMP 솔루션을 수백만 파트너 웹사이트와 앱 개발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구글이 단순히 자신들의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업계 전체가 새로운 규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알렉스와 그의 팀은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GDPR이라는 거대한 태풍을 막을 방파제를, 코드 한 줄 한 줄을 쌓아 올려 직접 건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