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 미디어 솔루션의 부상

52

발행일: 2025년 06월 24일

아마존의 급부상은 광고 시장 전체에 거대한 충격과 동시에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월마트, 타겟, 까르푸, 테스코… 전 세계의 거대 유통사들이 아마존의 성공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우리도 아마존과 같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수십 년간 쌓아온 막대한 양의 온·오프라인 구매 데이터, 수억 명의 충성 고객, 그리고 매일 수백만 명이 방문하는 웹사이트와 앱이라는 강력한 미디어 채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대한 ‘금광’ 위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러한 각성은 광고 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했다.

데이비드는 팀 회의에서 시장의 새로운 움직임을 설명했다.
“이제 모든 대형 유통사들이 자체적인 ‘리테일 미디어 네트워크(Retail Media Network)’를 구축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들의 웹사이트에서 아마존처럼 스폰서드 프로덕트 광고를 팔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바로 ‘기술’입니다.”

“그들은 아마존처럼 수천 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해서 자체 광고 플랫폼을 처음부터 만들 여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광고 서버, 경매 시스템, 리포팅 대시보드를 제공해 줄 기술 파트셔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시장의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기 마련이다. 크리테오 같은 기존의 광고 기술 회사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리타겟팅 기술을 발전시켜, 유통사들이 자체 광고 플랫폼을 쉽게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B2B 솔루션 사업에 뛰어들었다.

구글 역시 이 거대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만약 이 시장을 경쟁사들에게 모두 빼앗긴다면, 미래의 중요한 수익원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알렉스가 이끄는 ‘차세대 광고 플랫폼 팀’에 새로운 연구 과제가 떨어졌다.
‘리테일 미디어 솔루션(Retail Media Solution)’ 프로토타입 개발.

알렉스는 이 프로젝트의 아키텍처 설계를 총괄하게 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월마트 같은 거대 유통사가 구글의 기술을 활용하여, 마치 자신들의 자체 플랫폼인 것처럼 완벽하게 작동하는 광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솔루션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솔루션 패키지에 포함되어야 할 핵심 기술 요소는 다음과 같았다.

  1. 화이트 라벨(White Label) 광고 서버: 구글의 로고가 전혀 보이지 않는, 순수하게 기능만 제공하는 광고 서버. 유통사는 이 서버를 마치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것처럼 자사 브랜드로 포장하여 사용할 수 있다.
  2. 온사이트(On-site) 검색 광고 모듈: 유통사 웹사이트의 검색창과 직접 연동된다. 사용자가 ‘시리얼’을 검색하면, 켈로그나 네슬레 같은 제조사들이 입찰한 상품이 검색 결과 상단에 ‘스폰서 광고’로 노출되도록 하는 기능.
  3. 1자 데이터 연동 API: 유통사가 보유한 고객의 구매 이력 데이터(예: ‘사용자 A는 지난달 기저귀를 구매함’)를 안전하게 구글의 광고 시스템과 연동하여, 타겟팅에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인터페이스.
  4. 광고주용 셀프서비스 대시보드: 유통사에 입점한 수많은 상품 제조사(P&G, 코카콜라 등)들이 직접 광고 캠페인을 생성하고, 예산을 설정하며,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용하기 쉬운 웹 기반 대시보드.

알렉스는 팀원들과 함께 이 거대한 시스템의 청사진을 그려나갔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기존의 광고 플랫폼 개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에는 구글이라는 단일한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다른 기업들이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인프라’와 ‘도구’를 만드는 것에 가까웠다. 그것은 마치 전력 회사가 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을 넘어, 다른 공장들이 자체적으로 발전 시설을 구축할 수 있도록 터빈과 발전기를 판매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시스템을 설계하며, 쿠키의 종말이 광고 시장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제3자 데이터의 시대가 저물자, 강력한 ‘1자 데이터’를 보유한 플레이어들이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글의 역할은 그 새로운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최고의 기술과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술 조력자(Tech Enabler)’로 진화하고 있었다.

팀은 이제 단순히 구글의 광고 사업만을 위한 코드를 짜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 세계 유통 공룡들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