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새로운 놀이터, 리테일 미디어
제51화
발행일: 2025년 06월 24일
팀은 두 개의 거대한 전선에 동시에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프라이버시 샌드박스’의 복잡한 기술을 구현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일 ID 솔루션’을 앞세운 경쟁 연합의 동향을 감시해야 했다. 사무실의 공기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기술 표준 전쟁의 긴장감으로 팽팽했다.
모두가 쿠키의 대체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강자가 조용히 왕좌에 오르고 있었다.
변화의 조짐은 월스트리트의 분기별 실적 보고서에서 나타났다. 데이비드는 팀 회의에서 한 기업의 놀라운 성장 지표를 공유했다. 그 기업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아니었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Amazon)이었다.
보고서의 핵심은 아마존의 ‘광고 사업부’ 매출이었다. 그들의 광고 매출은 매 분기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성장하며, 이미 웬만한 거대 미디어 기업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한 주니어 엔지니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존은… 그냥 온라인 쇼핑몰 아닙니까? 그들이 어떻게 저런 광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거죠?”
데이비드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그 질문이 바로 우리가 간과했던 지점이다. 우리는 그들을 유통업체로만 생각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자산을 무기로, 광고 시장의 포식자가 되고 있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한 단어를 썼다.
1자 데이터 (First-party Data)
“우리가 쿠키의 종말로 인해 제3자 데이터를 잃고 고통받는 동안, 아마존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제3자 데이터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1자 데이터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있었다.”
데이비드는 구글과 아마존의 데이터 차이를 극명하게 비교했다.
“사용자가 구글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검색하면, 우리는 그 사용자가 ‘운동화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강력한 ‘의도(Intent)’ 데이터다.”
“하지만 사용자가 아마존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구매하면, 아마존은 그 사용자가 ‘나이키 브랜드의 특정 모델을, 얼마의 가격에, 언제 구매했는지’를 확신한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구매(Purchase)’ 데이터다.”
회의실의 모든 이들이 그 차이의 거대한 간극을 깨달았다. 구글이 사용자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는 동안, 아마존은 사용자의 지갑이 열리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사라가 부연했다.
“그들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웹사이트와 앱 안에서 직접 광고 상품을 판매합니다. 예를 들어, ‘스폰서드 프로덕트(Sponsored Products)’ 광고는 사용자가 ‘운동화’를 검색했을 때, 검색 결과 최상단에 특정 브랜드의 운동화를 노출시켜주는 방식이죠. 이것은 우리 검색 광고와 비슷해 보이지만, 구매가 일어나는 바로 그 장소에서 노출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강력합니다.”
알렉스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쿠키 아포칼립스는 경쟁자들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마존 같은 특정 플레이어에게는 거대한 ‘해자(moat)’를 파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제 다른 광고주들은 아마존의 구매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아마존의 광고 플랫폼에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었다.
업계는 이러한 흐름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리테일 미디어(Retail Media).
유통사(Retailer)가 자신들이 보유한 고객 데이터와 온라인 매장이라는 공간(Media)을 활용해 광고 사업을 하는 것. 아마존은 그 거대한 흐름의 선두주자였다.
데이비드는 알렉스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알렉스, 자네 팀은 아마존의 광고 플랫폼을 분석하게. 그들의 상품 종류는 무엇이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광고주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우리는 이 새로운 경쟁자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해.”
팀의 과제는 다시 한번 늘어났다. 프라이버시 샌드박스, 통일 ID 솔루션, 그리고 이제는 리테일 미디어라는 세 번째 거대한 파도.
알렉스는 깨달았다. 쿠키의 종말은 단 하나의 미래를 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규칙과 철학을 가진 여러 개의 평행 세계를 동시에 열어젖혔다. 그리고 구글은 그 모든 세계에서 동시에 살아남아야 하는, 가장 복잡한 생존 게임에 직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