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를 위한 조종석, D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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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01일

자신의 코드가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는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렉스는 다시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그가 만든 모듈은 ‘판매자(매체사)’가 어떤 ‘상품(광고 지면)’을 내놓았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중앙에는 ‘광고 거래소(Ad Exchange)’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의 한쪽이 비어 있었다.

바로 ‘구매자(광고주)’ 측이었다.

‘나이키는 어떻게 이 경매에 참여하지?’

알렉스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0.1초 안에 입찰을 결정해야 하는 RTB 시스템. 나이키 마케팅팀 직원이 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경매 요청에 일일이 입찰가를 입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기술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마치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사라가 커피 잔을 들고 다가왔다.

“고민하는 표정이네. 그림의 반쪽이 비어 보이나?”

“네, 사라. 판매자는 광고 지면 정보를 우리에게 주면 되지만, 구매자는 어떻게 실시간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건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갑니다. 그들도 우리 시스템에 직접 연결되는 코드를 개발해야 하는 건가요?”

“그게 바로 핵심이야.”

사라는 알렉스가 그려놓은 화이트보드에 마커를 들었다. 그녀는 ‘구매자 (광고주)’라고 쓰인 글자 옆에 새로운 네모 상자를 그렸다.

“나이키의 목표는 간단해.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20-30대 남성 중, 러닝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우리의 새 운동화 광고를 보여주고 싶다. 예산은 10만 달러.’ 이런 식이지. 그들은 마케팅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API나 JSON의 언어로 이야기하지 않아.”

그녀는 네모 상자 안에 세 글자를 썼다.

DSP

“그래서 광고주를 위한 전문 소프트웨어가 필요해. 그들의 마케팅 언어를, 0.1초 안에 입찰을 결정하는 기계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통역사 같은 존재.”

“DSP… 말씀이십니까?”

“맞아. Demand-Side Platform. 수요 측 플랫폼이지.”

사라는 DSP가 해야 할 역할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첫째, DSP는 광고주가 캠페인을 설정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제공해야 해. 예산, 기간, 타겟 고객의 조건(나이, 지역, 관심사 등)을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입력할 수 있게 말이야.”

“둘째, 내부에 고도로 최적화된 ‘입찰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어야 해. 애드 익스체인지로부터 ‘32세 남성, 샌프란시스코 거주, 스포츠 뉴스 페이지 방문’이라는 경매 정보가 날아왔을 때, ‘이 사용자는 우리가 찾던 타겟과 85% 일치하므로 1.2달러에 입찰한다’ 혹은 ‘타겟과 맞지 않으므로 입찰을 포기한다’ 같은 결정을 수만분의 일 초 안에 내려야 하지.”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우리 애드 익스체인지의 RTB 프로토콜과 완벽하게 연동되어, 초당 수십만 건의 경매 요청을 받고 응답할 수 있는 강력한 기술 인프라를 갖춰야 해.”

알렉스는 그제야 전체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광고주는 직접 경매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DSP라는 전문 도구를 사용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입력하고, 실제 전투는 DSP가 대신 치러주는 것이었다.

“광고주에게 DSP는 마치 전문 주식 트레이더를 위한 ‘트레이딩 단말기’ 같은 거군요.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미리 설정한 전략에 따라 자동으로 매수 주문을 넣어주는.”

“정확한 비유야, 알렉스. 우리는 시장(Ad Exchange)만 만들어서는 안 돼. 시장에 참여할 플레이어들을 위한 최고의 도구(DSP)도 함께 만들어야 이 생태계가 돌아가는 거야.”

팀 회의에서 데이비드는 알렉스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었다.

“우리가 자체 DSP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어. 알렉스, 자네는 애드 익스체인지가 DSP에게 경매 정보를 보낼 때, 어떤 데이터 필드들을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 명세서(API Specification) 초안을 작성해봐. 사용자 정보, 지면 정보, 위치 정보… DSP가 최적의 입찰 결정을 내리려면 어떤 정보가 필요할지 광고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이전 과제가 판매자의 상품 목록을 확인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구매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상품 설명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알렉스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 문서 작성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광고주가 사용할 ‘조종석’의 계기판을 설계하는, 창조의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