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의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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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30일

AI 윤리 위원회의 활동은 알렉스와 그의 팀에게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AI를 ‘모든 것을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마법 상자’로 보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들은 AI의 명확한 한계와 잠재적인 위험성을 인지하고, 인간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알렉스는 팀의 새로운 개발 철학을 제시했다. 그는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두 개의 다른 모델을 그렸다.

모델 A: 완전 자동화 (Full Automation)
인간 (목표 설정) -> AI (전략 수립, 실행, 최적화) -> 결과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왔던 모델입니다. 인간은 그저 ‘전환율을 높여줘’라는 식의 높은 수준의 목표만 설정하고, 나머지 모든 과정은 AI 블랙박스에 맡기는 방식이죠. 이 모델은 효율적이지만, AI 윤리 문제에서 보았듯 통제 불가능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델 A 위에 X표를 쳤다. 그리고 옆에 새로운 모델을 그렸다.

모델 B: 공생 (Symbiosis)
인간 (전략, 창의성, 윤리적 경계 설정) <-> AI (데이터 분석, 실행, 최적화) -> 결과

알렉스는 두 주체 사이에 양방향 화살표를 그려 넣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것입니다. ‘공생’ 모델.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키고, 인간은 AI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ZARA의 마케팅 매니저를 생각해보죠. 그녀는 AI에게 ‘광고를 최적화해줘’라고 막연하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 전략적 입력: ‘우리의 이번 시즌 핵심 타겟은 Z세대이며, 브랜드 가치를 위해 지나치게 저렴해 보이는 광고는 피하고 싶다.’
  • 창의적 입력: ‘광고 문구는 이런 톤앤매너를 유지해야 하고, 모델은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어야 한다.’
  • 윤리적 입력: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뉴스 페이지에는 우리 광고를 노출하지 말아달라.’

“그러면 AI는 인간 마케터가 설정한 이 ‘가드레일’ 안에서, 자신의 강력한 데이터 처리 능력을 발휘하여 최적의 실행안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AI는 다시 인간에게 리포트를 통해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하죠. ‘Z세대 중에서도, 틱톡을 주로 사용하는 그룹이 예상외로 높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그룹을 위한 별도의 캠페인을 고려해보시겠습니까?’ 와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기계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 배우며, 함께 더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역동적인 과정이었다.

이 ‘공생’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팀은 광고 플랫폼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대시보드가 단순히 결과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면, 새로운 대시보드는 사용자가 AI와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 전략 설정 인터페이스: 광고주가 자신의 비즈니스 목표와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쉽게 입력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 ‘What-If’ 시뮬레이션: ‘만약 타겟 연령을 30대로 바꾸면, 예상 도달률과 비용은 어떻게 변할까?’ 같은 가상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여, AI가 예측한 결과를 미리 보여주는 기능.
  • 설명 가능한 리포팅: ‘왜 AI가 이 광고 소재를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이 이미지는 과거에 유사한 타겟 그룹에서 가장 높은 클릭률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와 같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해주는 기능.

알렉스는 이 새로운 플랫폼을 설계하며, 기술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 똑똑하고 창의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AI는 인간 마케터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그들의 가장 강력한 지능형 조수(Intelligent Assistant)가 되어야 했다.

팀의 개발 방향은 이제 단순히 더 빠른 알고리즘, 더 정확한 모델을 만드는 것을 넘어섰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과 기계가 가장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더 깊고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코드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이 공생 모델이야말로, AI 시대에 기술이 가져야 할 책임감과 인간의 존엄성을 모두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알렉스는 굳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