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그리고 남겨진 것들
제86화
발행일: 2025년 07월 11일
길고 지루했던 법정 공방이 마침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알렉스의 증언과 존 밀러라는 예기치 못한 증인의 등장은 재판의 분위기를 구글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었다. 배심원들은 더 이상 구글을 단순한 악의적인 독점 기업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들은 디지털 광고라는 미개척지를 개척하며 수많은 기술적 난관과 씨름해 온 혁신가들의 모습을 보았다.
마침내, 판결의 날이 밝았다.
알렉스와 데이비드, 사라를 포함한 팀의 핵심 멤버들은 법정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등 뒤에는 지난 10여 년간의 희로애락이, 그리고 앞에는 회사의 미래가 걸려 있었다.
배심원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다. 법정 안의 모든 소음이 멎고, 그의 목소리만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이에 본 배심원단은, 미 법무부가 제기한 구글의 디지털 광고 사업 부문 독점 혐의에 대해…”
알렉스는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 박동이 귀에 들릴 정도였다.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평결합니다.”
순간, 구글 변호인단과 임직원들이 앉아 있는 쪽에서 낮은 탄성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알렉스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앉은 데이비드의 손을 꽉 잡았다. 이겼다. 길고 긴 싸움이, 마침내 그들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판사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존중하여 최종 판결을 내렸다. 구글의 광고 사업 부문을 강제로 분할하라는 법무부의 요구는 기각되었다. 다만, 구글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광고 경매 과정의 투명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몇 가지 개선 조치를 이행하라는 권고가 덧붙여졌다.
그것은 구글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날 저녁, 구글플렉스에서는 거대한 승전 파티가 열렸다. 알렉스는 동료들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마리아 부사장은 단상에 올라, 이번 승리의 주역인 법무팀과 알렉스가 속한 광고 기술팀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냈다.
하지만 파티의 소란 속에서, 알렉스는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파티장을 빠져나와, 자신이 처음 면접을 보았던 43번 빌딩 앞의 벤치에 앉았다.
그때, 사라가 그에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맥주 두 캔이 들려 있었다.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사라가 맥주 한 캔을 건네며 말했다.
“고마워요.” 알렉스는 캔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오늘 같은 날은 좀 웃어도 되잖아.” 사라가 물었다.
알렉스는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가 이겼어요, 사라. 그런데… 왜 마음이 편치 않죠? 마치 전쟁은 끝났는데, 아무것도 해결된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에요.”
사라는 그의 마음을 안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승자의 책임’이라는 거야, 알렉스. 우리는 법정에서는 이겼지만, 세상의 질문에 완전히 답한 것은 아니거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이번 소송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줬어. 우리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고, 우리의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그 힘이 너무 거대해지면 사회는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의심을 갖게 된다는 것. 투명성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여전히 부족했다는 것도 인정해야만 해.”
“법무부와의 싸움은 끝났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싸움이 남아있어. 바로 시장의 신뢰, 그리고 사용자들의 신뢰를 온전히 회복하는 싸움이지. 판결문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기술과 다음 정책이 그것을 증명해야만 해.”
사라의 말에, 알렉스는 자신이 느꼈던 허전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법정에서의 승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더 높은 수준의 책임감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
그는 문득 자신이 썼던 ‘연대기’를 떠올렸다.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재판은 그 연대기의 한 챕터에 불과했다.
알렉스는 남은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혼란이 없었다. 대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맞아요, 사라. 우리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불이 환하게 켜진 구글플렉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를 기다리는 새로운 도전과, 그가 써 내려가야 할 연대기의 다음 장을 향해, 그는 다시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