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단에 서다
제98화
발행일: 2025년 07월 17일
시간이 흘러, 레오가 팀을 이끈 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세상은 또 한 번 변했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신기한 기술이 아닌,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고, 가상 세계는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레오의 팀은 이 모든 변화의 파도를 성공적으로 넘으며, 구글 광고의 기술적 리더십을 굳건히 지켜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것은 그가 존경하는 인물, 알렉스 노튼의 연설로 유명해졌던 세계 최대의 광고 기술 컨퍼런스, ‘애드위크’ 조직위원회로부터 온 것이었다.
“레오 킴 귀하, 귀하를 올해 애드위크 컨퍼런스의 기조연설자로 정중히 초청합니다.”
레오는 이메일을 읽고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몇 년 전, 자신이 객석에서 경외감에 차 바라보았던 바로 그 무대. 광고 기술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이 꿈꾸는 영예로운 자리에, 이제 자신이 서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니었다. 알렉스의 후계자로서, 그가 ‘프로그래머틱 광고 연대기’의 다음 챕터를 공식적으로 써 내려갈 자격이 있음을 업계 전체로부터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연설 준비는 쉽지 않았다. 그는 알렉스처럼 거대한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겪은 시대는 거대한 단절과 혼돈,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폭발하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시대였다.
연설 당일. 레오는 굳은 표정으로 뉴욕의 컨퍼런스 홀 무대 뒤에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이제 구글의 고문으로 물러나 여유를 찾은 데이비드와, 클라우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라, 그리고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온 알렉스가 함께 있었다.
알렉스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레오, 긴장할 것 없어. 자네는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잖아. 자네가 지난 5년간 팀과 함께 부딪히고 해결해 온 그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면 돼.”
알렉스의 말에, 레오는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그는 더 이상 알렉스의 그림자를 좇는 후배가 아니었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독립적인 리더였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레오는, 수천 명의 청중을 향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몇 년 전, 이 자리에서 저의 위대한 멘토였던 알렉스 노튼은 우리에게 ‘더 나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 저는 그 질문에 대한 저희 세대의 대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의 연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애플의 ATT 정책으로 인해 IDFA가 사라졌을 때 업계가 겪었던 극심한 혼란과 위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사용자 추적이 불가능해진 세상에서, ‘컨텍스트’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AI 기술로 재발견하여 앱과 CTV 광고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 거대 기업들이 1자 데이터 연합을 통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려 할 때, 구글이 지배자가 아닌 ‘기술 파트너’로서 그들의 협력을 돕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검색이라는 구글의 핵심 자산이 어떻게 위기 속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부상 속에서 어떻게 광고의 창작과 유통 방식을 혁신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직은 미지의 영역인 ‘가상 세계’에서 광고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팀의 고민과 실험들을 공유했다.
그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끊임없는 위기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아 나선 탐험의 기록이었다.
연설의 말미에, 레오는 청중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알렉스는 우리에게 ‘더 나은 광고’를 묻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그 질문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연 ‘보이지 않는 광고’를 만들 수 있을까요?”
“광고가 더 이상 방해하는 이물질이 아니라, 사용자의 삶과 경험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정보와 서비스, 그리고 즐거움 그 자체가 되는 세상. 사용자가 광고라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가치를 체험하게 되는 세상. 저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개인화 기술, 생성형 AI, 그리고 가상 세계의 기술들이 결국 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연대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의 제목은 아마도 ‘광고의 종말’, 혹은 ‘모든 것이 광고가 되는 시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 미래를 함께 만들어갑시다.”
레오의 말이 끝나자, 장내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객석 맨 앞줄에서 그를 지켜보던 알렉스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이제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그가 시작했던 이야기는, 그보다 더 뛰어나고 현명한 다음 세대의 목소리를 통해, 더 넓고 깊은 세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틱 광고 연대기’는 이제 레오의 손에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장대한 서사를 써 내려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