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세계의 광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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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7월 17일

크리에이터 마켓플레이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광고 생태계가 새로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레오의 팀은 다시 한번 기술의 최전선에서 불어오는 미래의 바람을 감지했다. 이번 바람은 현실 세계가 아닌, 아직은 희미한 ‘가상 세계(Virtual Worlds)’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로블록스(Roblox), 포트나이트(Fortnite), 그리고 페이스북이 ‘메타(Meta)’로 사명을 바꾸며 제시한 ‘메타버스(Metaverse)’. Z세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이제 스크린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스크린 안의 3D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게임을 즐기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새로운 세계의 등장은 광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졌다.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이 가상 공간에서, 광고는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

레오는 ‘차세대 광고 포맷 연구’를 위한 작은 TF를 꾸렸다. 그들의 임무는 이 미지의 가상 세계에 광고를 접목할 수 있는,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사용자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 방법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팀의 첫 번째 아이디어는 가장 직관적이었다. 바로 ‘인게임(In-game) 빌보드’였다.

한 젊은 엔지니어가 로블록스 게임 화면을 띄워놓고 설명했다.
“이 가상 도시의 거리를 보십시오. 현실의 타임스퀘어처럼, 건물 벽과 버스 정류장에 광고판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가 DOOH(디지털 옥외 광고)에서 했던 것처럼, 이 가상의 광고판을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판매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나이키는 이 게임 속 농구 코트 옆 광고판에 자신들의 신상 농구화 광고를 걸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는 게임 속 광장에 거대한 콜라병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할 수도 있죠. 현실 세계의 PPL(간접 광고)을 가상 세계로 옮겨오는 겁니다.”

이 방식은 사용자 경험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가상 세계에 녹아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팀은 이 가상 빌보드에 노출될 광고를 실시간으로 교체하고, 해당 광고판 앞을 지나가는 아바타의 수를 집계하여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기술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팀의 UX 디자이너, ‘소피아’는 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단순히 광고판을 설치하는 것은 너무 수동적인 방식입니다. 가상 세계의 진정한 잠재력은 ‘상호작용’에 있습니다. 광고가 사용자의 경험의 일부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브랜디드 가상 아이템(Branded Virtual Items)’이었다.

“포트나이트 같은 게임에서, 구찌가 실제 명품 가방과 똑같이 생긴 한정판 ‘디지털 가방’ 아이템을 아바타용 액세서리로 출시한다고 상상해보세요. 사용자들은 이 디지털 명품을 얻기 위해 특정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소액 결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광고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갖고 싶은 ‘상품’이 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사용자가 이 구찌 디지털 가방을 메고 게임을 하면, 다른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움직이는 광고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용자들은 광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발적으로 브랜드를 홍보하는 ‘앰배서더’가 되는 거죠.”

이 아이디어는 광고와 콘텐츠, 그리고 상거래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것이었다. 브랜드는 더 이상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즐기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경험’과 ‘가치’를 제공해야 했다.

레오의 팀은 이 두 가지 방향, 즉 ‘가상 공간 속 광고’와 ‘가상 아이템으로서의 광고’를 동시에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상 아이템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거래하기 위한 수단으로 NFT(대체 불가능 토큰) 기술을 연구하기도 하고, 가상 공간에서 사용자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분석하여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새로운 뷰어빌리티 기술을 고민했다.

그들이 마주한 세계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메타버스가 정말로 인터넷의 미래가 될지, 아니면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레오는 알고 있었다. 기술 리더의 역할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여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을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광고판을 설계하고 있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새로운 시대의 최전선에서, 광고의 정의를 다시 한번 확장하기 위한 대담한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