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거울의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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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5월 02일

런던 외곽, 음습한 잿빛 하늘 아래 잠긴 에단 리브스의 자택. 3년 전 오늘, 세상이 무너져 내렸던 바로 그날이었다. 사만다의 3주기.

지독한 숙취가 망치처럼 머리를 내리쳤다. 에단은 뻑뻑한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익숙한 천장이 아니라 싸구려 위스키 병들이 나뒹구는 거실 소파 위였다. 입안에서는 시큼한 담즙 맛이 맴돌았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고통을 호소하는 듯 욱신거렸다.

"젠장…."

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발밑에 채이는 빈 병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어지럽게 널린 연구 서적과 구겨진 논문들 사이로, 먼지 쌓인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만다.

햇살처럼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 위로 에단의 일그러진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공허한 눈동자는 초점 없이 액자 속 그녀를 응시했다. 아내, 사만다. 그녀의 부재는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으로 다가왔다. 죄책감이라는 녹슨 칼날이 심장을 후벼 파는 감각.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조차 무뎌질 정도였다.

"미안해…. 내가…."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는 결국 소파에 주저앉아 마른 오열을 터뜨렸다. 남자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방 안 가득 싸늘하게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그의 흐느낌만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그 시각, 2층 릴리의 방.

창백한 얼굴의 소녀는 침대에 웅크린 채 학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텅 빈 눈동자는 창밖의 잿빛 하늘을 향해 있었지만,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17살 소녀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깊은 그늘이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릴리는 침대 밑에서 낡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어머니, 사만다의 유품 상자였다.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 체온이 느껴지는 듯한 스카프, 빛바랜 사진 몇 장, 그리고… 한 켠에 아무렇게나 끼워져 있던 낡은 메모지 한 장.

무심코 펼쳐본 메모지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호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수학 공식 같기도, 고대 문자 같기도 한 기묘한 나열. 마치 암호처럼 보였다. 릴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평범한 물리학자였던 어머니가 왜 이런 것을 가지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래층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릴리는 반사적으로 메모지를 구겨 나무 상자에 쑤셔 넣었다.

잠시 후, 에단이 릴리의 방문 앞에 섰다. 헝클어진 머리, 핏발 선 눈, 온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술 냄새. 그는 어색하게 문고리를 잡았다.

"릴리… 학교는…."

"...안 갔어요." 방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몸이 안 좋으냐?"

"……." 대답 대신 침묵이 흘렀다.

에단은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위로? 사과? 아니면 그저 평범한 아침 인사? 어떤 말도 이 부녀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을 메울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 잘 알았다. 3년 전 그날 이후, 그들의 시간은 깨진 거울처럼 조각나 버렸다.

"…아빠, 술 냄새나요."

날카로운 한 마디가 에단의 가슴을 찔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비틀거리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릴리는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어깨 위로, 창밖의 잿빛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날 밤, 에단은 또다시 악몽에 시달렸다.

어둠 속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설명할 수 없는 형태의 거대한 비행 물체가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린 자신은 공포에 질려 숨도 쉬지 못한 채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성의 빛줄기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순간, 에단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침대 옆 탁자 위에는 항우울제와 수면제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약병을 집어 들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아내의 죽음. 그리고 우주.

이 모든 것이 뒤섞여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는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수한 별들이 떠 있는 검은 허공.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그는 알아야만 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광기 어린 집착의 불꽃이 그의 붉게 충혈된 눈동자 속에서 위태롭게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