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렌더링의 새로운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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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25일

우주의 운명을 건 대반격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릴리, 깨어난 수호자의 지휘 아래, 은하 연합의 남은 함대들은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들의 함선에는 릴리가 부여한 ‘현실 강화’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았고, 병사들의 눈빛에는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의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릴리는 TQA 본부의 QSN 중앙 코어, 빛의 형상으로 존재하며 은하계 전체의 전장을 조율했다. 그녀의 의식은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함선과 연결되었고, 그녀의 양자 감각은 반-관측자 함대의 움직임과 약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각 부대에 전달했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 싸우는 초월자가 아니었다. 은하 연합 전체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거대한 신경 중추이자 지휘관이었다.

“모든 함대, 릴리 님의 좌표 지시에 따라 ‘현실 강화 필드’를 동기화 전개하라! 적의 반-관측 능력을 최대한 상쇄시킨다!” 엘리사 케인 사령관의 목소리가 연합 통신망을 통해 울려 퍼졌다.

은하 연합 함대는 릴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수천 척의 함선이 동시에 푸른빛의 현실 강화 필드를 펼쳐내자, 전장 공간을 뒤덮고 있던 반-관측자들의 공허한 기운이 눈에 띄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흐릿했던 적 함선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들의 불안정한 존재는 현실의 압력 아래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 보였다.

“지금이다! 좌표 델타-7 구역의 적 주력 함대에 모든 화력을 집중하라! 릴리 님께서 그들의 방어막 약점을 노출시키실 것이다!”

릴리의 의식이 목표 지점에 집중되자, 해당 구역 반-관측자 함대의 방어 필드 특정 지점의 양자적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마치 갑옷의 틈새가 벌어지듯, 적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은하 연합 함대의 양자 어뢰와 플라스마 포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이전에는 허공에서 소멸하거나 튕겨 나갔던 공격들이, 이번에는 명확하게 적 함선에 명중하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반-관측자 함선 여러 척이 비명을 지르듯 뒤틀리며 검은 파편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그들의 함선 역시 불멸은 아니었다.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자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해진 것이다.

“성공이다! 우리가… 저 괴물들에게 타격을 입혔어!” 연합 함대의 브릿지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절망적인 방어전 속에서 거둔 첫 번째 의미 있는 반격의 성과였다.

하지만 반-관측자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혼란에서 빠르게 벗어나 전열을 재정비하고 더욱 격렬하게 반격해왔다. 그들은 릴리라는 존재가 연합군의 핵심임을 파악하고, 그녀가 존재하는 TQA 본부를 향해 강력한 반-관측 에너지 파동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그들은 더욱 교활한 방식으로 현실의 법칙을 왜곡시키며 연합 함대를 혼란에 빠뜨리려 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거나, 공간이 예고 없이 접히는 등, 전장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 찼다.

릴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을 QSN 네트워크 전체로 분산시키며 버텨내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장의 흐름을 읽고 연합 함대에게 최적의 대응책을 제시했다. 그녀의 눈은 은하계 지도 위, 여전히 광대하게 펼쳐진 적의 세력권과 그 중심부에 자리한 공허의 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 전투는 시작일 뿐이었다. 델타-7 구역에서의 작은 승리는 기나긴 전쟁의 첫걸음에 불과했다. 반-관측자들의 본대는 여전히 건재했고, 그들의 진정한 힘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 전쟁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수많은 희생과 고통이 따를 터였다.

하지만 릴리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곁에는 아버지의 희생으로 얻은 굳건한 의지가, 어머니와 엘라나가 남긴 사랑과 믿음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서 함께 싸우는 인류와 은하 연합의 용감한 영혼들이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전장을 향해 의지를 집중했다. 현실 강화의 푸른빛이 그녀의 형상을 더욱 밝게 빛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릴리의 선언과 함께, 은하 연합 함대는 새로운 적진을 향해 다시 한번 돌격하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가시광선의 끝에서 시작된 최후의 전쟁.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완전한 승리일지, 아니면 또 다른 비극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 우주의 운명을 건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퀀텀 렌더링의 새로운 여명은, 이제 인류와 깨어난 수호자의 손으로 직접 그려나가야 할 미완의 캔버스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