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네커의 경고, "자연수는 신이 만들었고..."
제10화
발행일: 2025년 06월 11일
칸토르의 연구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의 이름은 독일 수학계에 조금씩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일대일 대응’을 통해 무한집합의 크기를 비교하려는 그의 시도와 ‘자연수와 짝수의 크기가 같다’거나 ‘자연수와 유리수의 크기가 같다’는 결론들은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활발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의 연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 베를린 대학의 철옹성, 레오폴트 크로네커의 귀에 칸토르의 이름과 그의 ‘기묘한’ 이론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크로네커는 칸토르의 스승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수학 철학은 칸토르가 나아가려는 방향과 정반대에 있었다. 칸토르가 ‘실제 완성된 무한’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성질을 탐구하려 했다면, 크로네커는 그러한 무한의 개념 자체를 수학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 날, 베를린 대학의 한 사교 모임. 당대의 지성들이 모여 학문과 예술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자리였다. 크로네커 교수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언제나처럼 단호함과 권위가 실려 있었다.
“수학이란 인간의 정신이 명확하게 구성할 수 있는 대상만을 다루어야 하네. 모호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개념은 수학의 순수성을 해칠 뿐이야.”
그때, 한 젊은 수학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 혹시 할레 대학의 게오르크 칸토르 박사의 최근 연구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그가 ‘무한집합의 농도’라는 개념을 통해 무한에도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크로네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는 이미 칸토르의 몇몇 초기 논문들을 접한 바 있었다. 처음에는 젊은 학자의 치기 어린 시도 정도로 여겼지만, 칸토르의 연구가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그의 심기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칸토르라… 그 젊은 친구가 아직도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크로네커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냉랭함은 주변 공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수의 집합과 유리수의 집합이 같은 ‘크기’를 가진다고 합니다. 일대일 대응이라는 방법으로 증명했다고 하더군요.”
크로네커는 코웃음을 쳤다.
“일대일 대응? 그런 유희적인 조작으로 무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단 말인가? 그건 수학이 아니라 곡예에 가깝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항상 강조하지 않았나. ‘자연수는 신의 선물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작품이다(Die ganzen Zahlen hat der liebe Gott gemacht, alles andere ist Menschenwerk)’.”
이 말은 크로네커의 수학 철학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였다. 그에게 있어 수학의 유일하게 확실한 토대는 오직 자연수뿐이었다. 유리수, 실수, 복소수 등은 자연수로부터 유한한 단계의 논리적 연산을 통해 ‘구성’될 수 있을 때만 의미를 가졌다. 그가 보기에 칸토르가 다루려는 ‘완성된 무한집합’이나 ‘초한수’ 같은 개념들은 인간이 결코 명확하게 구성할 수 없는, 따라서 수학의 영역에 속해서는 안 되는 허깨비와 같은 존재였다.
“칸토르의 작업은 위험하네. 그는 수학을 안개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고 있어. 젊은 학도들이 그런 현혹적인 이론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야.”
크로네커의 발언은 단순한 학문적 비판을 넘어선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당시 독일 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젊은 학자의 논문 게재나 교수직 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크로네커의 이러한 공개적인 비판은 칸토르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칸토르 역시 크로네커의 이러한 반응을 전해 듣고 있었다. 존경했던 스승의 차가운 시선은 그에게 적잖은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한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크로네커의 반대는 그의 투지를 더욱 불태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이론은 결코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다. 이것은 엄밀한 수학적 논리에 기반한 것이다.”
칸토르는 데데킨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며 결의를 다졌다.
바야흐로 유한주의의 거두 크로네커와 무한의 탐험가 칸토르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칸토르는 아직 자신이 얼마나 험난하고 외로운 길을 걷게 될지 알지 못했다. 그의 손에는 ‘일대일 대응’이라는 예리한 검이 들려 있었지만, 그 검만으로는 학계의 견고한 성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터였다. 그의 위대한 여정은 이제 막 첫 번째 시련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