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수와 짝수의 크기는 같다!
제9화
발행일: 2025년 06월 10일
칸토르가 제시한 ‘일대일 대응’이라는 개념은 마치 조용한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수학계에 잔잔하지만 분명한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그가 이 도구를 사용하여 내린 첫 번째 결론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로 “자연수의 집합과 짝수의 집합은 크기가 같다”는 주장이었다.
생각해보자. 자연수는 {1, 2, 3, 4, 5, 6, ...} 이렇게 끝없이 이어진다. 짝수는 {2, 4, 6, ...} 으로, 자연수에서 홀수를 쏙 빼놓은 것이다. 마치 넓은 초원에서 절반의 풀을 솎아낸 것과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전체 초원이 솎아낸 초원보다 넓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도 안 돼! 어떻게 부분이 전체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칸토르의 주장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로 여겨져 왔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처럼,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런데 칸토르는 이 오랜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었다.
할레 대학의 한 강의실. 칸토르는 학생들 앞에서 이 기묘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자신의 발견에 대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여러분, 두 집합의 크기를 비교한다는 것은, 그 원소들을 하나씩 짝지을 수 있느냐를 보는 것입니다.”
그는 분필을 들어 칠판에 두 줄의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윗줄에는 자연수를 차례로 나열했다:
1, 2, 3, 4, 5, ... , n, ...
아랫줄에는 짝수를 차례로 나열했다:
2, 4, 6, 8, 10, ... , 2n, ...
그리고 그는 각 줄의 숫자들을 세로선으로 연결했다.
“자, 보십시오. 자연수 1에는 짝수 2를, 자연수 2에는 짝수 4를, 자연수 3에는 짝수 6을 대응시킵니다. 이렇게 계속하면, 모든 자연수는 자신만의 짝인 짝수를 가지게 됩니다. 동시에, 모든 짝수 또한 자신과 짝을 이루는 자연수를 정확히 하나씩 가지게 되지요. 예를 들어 짝수 100은 자연수 50과 짝을 이룹니다. 짝수 2n은 자연수 n과 짝을 이루고요. 빠지거나 남는 원소가 있습니까?”
학생들은 잠시 침묵했다. 칠판에 그려진 단순한 대응 관계는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반박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편함이 꿈틀거렸다. 분명히 홀수만큼의 원소가 빠졌는데, 어떻게 크기가 같을 수 있단 말인가?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교수님, 하지만 짝수의 집합은 명백히 자연수 집합의 일부이지 않습니까? 자연수에는 짝수 말고도 홀수가 더 있지 않습니까?”
칸토르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다. 유한한 집합에서는 여러분의 직관이 정확히 맞습니다. 사과 다섯 개가 든 바구니에서 사과 두 개를 꺼내면, 남은 세 개는 원래 다섯 개보다 적지요. 하지만 무한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유한한 직관이 항상 통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칠판에 ‘무한집합의 특징’이라고 적었다.
“어떤 집합이 자기 자신의 진부분집합과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면, 그 집합은 무한집합입니다. 이것은 데데킨트 선생이 제시한 무한집합의 정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본 것처럼, 자연수의 집합은 자신의 진부분집합인 짝수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자연수는 무한집합이고, 이 경우 ‘부분이 전체와 크기가 같다’는 놀라운 현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마치 마술 트릭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과 같았다. 분명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원리를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신기함을 감출 수 없는 그런 느낌.
칸토르의 이 발견은 단순히 ‘자연수와 짝수의 개수가 같다’는 사실을 넘어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무한의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유한한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였다. 무한을 다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상식과 직관을 넘어서는 새로운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 ‘부분이 전체와 크기가 같을 수 있다’는 성질은 훗날 ‘힐베르트의 호텔’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통해 더욱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무한개의 방을 가진 호텔에는 빈 방이 없더라도 새로운 손님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 그 기저에는 바로 칸토르가 밝혀낸 무한집합의 이 기묘한 특성이 깔려 있었다.
물론 이 설명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특히 크로네커와 같은 유한주의자들에게 칸토르의 주장은 궤변에 불과했다. 그들은 ‘완성된 무한’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무한집합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칸토르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도구가 무한의 신비를 푸는 열쇠라고 굳게 믿었다. 자연수와 짝수의 크기가 같다는 것은 그가 열어젖힌 무한의 문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에 불과했다. 이제 그는 이 문을 지나 더욱 깊고 복잡한 무한의 세계로 탐험을 계속할 참이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유리수,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실수라는 거대한 바다였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그는 수학의 역사를 뒤흔들 폭풍우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