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들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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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03일

취리히 공과대학의 강의실은 젊은 칸토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학문의 길. 그의 명민한 두뇌는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였고, 특히 수학 강의 시간에는 그의 눈빛이 유독 반짝였다. 그러나 취리히는 칸토르의 지적 갈증을 채워주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그의 야심은 더 넓고 깊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 수학계의 심장부는 단연 베를린이었다. 그곳에는 마치 밤하늘의 성좌처럼 빛나는 거장들이 포진해 있었다. ‘수학의 성지’로 불리던 베를린 대학. 칸토르의 발길이 그곳으로 향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1863년, 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베를린 대학의 학생이 되었다.

그곳에서 칸토르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그중에서도 카를 바이어슈트라스(Karl Weierstrass)는 젊은 칸토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현대 해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던 바이어슈트라스는 당시 수학계에 만연해 있던 논리적 허술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강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엄밀함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분필 가루 날리는 강의실, 바이어슈트라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학생들은 숨을 죽였다. 그는 마치 예리한 칼날로 수학적 개념들을 해부하듯, 모호한 부분들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명확한 논리로 재구성했다.
“수학에서 직관은 중요하네. 하지만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 모든 주장은 빈틈없는 논리로 뒷받침되어야 하네!”
바이어슈트라스의 가르침은 칸토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적분학의 기초를 다지고, 극한, 연속성 등의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려는 그의 노력은 칸토르에게 ‘수학적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안겨주었다. 칸토르는 이전까지 어렴풋하게만 느껴왔던 수학의 아름다움이, 바로 이 철저한 논리적 엄밀성 위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다른 거목은 에른스트 쿠머(Ernst Kummer)였다. 수론 분야의 대가였던 쿠머는 ‘이상수(ideal numbers)’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룬 인물이었다. 그의 강의는 칸토르에게 추상적인 대수 구조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레오폴트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칸토르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이 인물 역시 당시 베를린 대학의 강력한 기둥이었다. 쿠머와 마찬가지로 수론과 대수학에 정통했던 크로네커는 바이어슈트라스와 함께 베를린 대학 수학과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고, 그의 말 한마디는 젊은 학도들에게 절대적인 무게를 지녔다.

크로네커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수학자였다. 그는 훗날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유명한 말을 자주 되뇌곤 했다.
“자연수는 신의 선물이고,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작품이다.”
이 말은 그의 수학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크로네커에게 수학이란 오직 ‘구성 가능한 것’, 즉 유한한 단계의 연산을 통해 명확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대상만을 다루어야 했다. 특히 자연수처럼 명백하게 존재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는 모든 개념에 대해 그는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그의 세계에서 ‘무한’은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계속되는 과정일 뿐이었다.

초기 칸토르에게 크로네커는 존경스러운 스승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지성과 방대한 지식은 칸토르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칸토르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크로네커의 유한주의 철학에 대한 미묘한 이질감이 싹트고 있었다. 바이어슈트라스로부터 엄밀성의 중요성을 배웠지만, 칸토르의 마음은 이미 크로네커가 그어놓은 경계선 너머,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무한의 세계를 향해 조금씩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베를린의 공기는 지적 자극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로 다른 철학을 가진 거대한 산맥들 사이에서, 젊은 칸토르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야 했다. 스승들의 가르침은 그에게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었지만, 머지않아 그 그림자는 넘어서야 할 거대한 벽이 될 운명이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질문들이 용암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그 질문들은 곧 삼각함수라는 뜻밖의 실마리를 통해 폭발적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