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드리운 전운

222025년 08월 12일4

1938년, 튜링이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하던 무렵, 대서양 건너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의 평화로운 오후는 여전했지만, 티타임의 대화 주제는 점차 무거워졌다. 수학의 미해결 문제 대신, 신문 1면에 실린 유럽의 지도가 화제에 올랐다.

“오스트리아가… 결국 합병되었군.”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유럽 출신 학자들의 얼굴에는 깊은 우려가 서려 있었다. 그들에게 히틀러의 독일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직접 탈출해온, 이성이 마비된 광기의 현장이었다.

튜링은 신문에 실린 히틀러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기계적인 연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중. 그것은 튜링에게 기묘한 불쾌감을 주었다.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비이성적인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보였다.

그의 연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의 박사 논문은 서수(ordinal number)를 이용한 새로운 논리 체계에 관한 것이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심오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소음은 그의 연구실 벽을 뚫고 들어왔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 위기,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 정책. ‘우리 시대의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지만, 튜링을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것이 폭풍 전의 고요함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영국에서 온 한 통의 편지가 그의 책상 위에 놓였다. 발신인은 영국 외무부 산하의 ‘정부 암호 학교(Government Code and Cypher School, GC&CS)’였다.

편지의 내용은 지극히 정중하고 모호했다.

「...본교는 국가적 비상사태 발생 시, 귀하와 같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귀하께서 외무부를 위해 봉사할 의향이 있으신지 조용히 타진하고자 합니다...」

편지에는 ‘암호’나 ‘전쟁’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그 행간에 담긴 의미는 서늘할 정도로 명백했다. 영국 정부는 조용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교수 타입의 사내들’을 비밀리에 물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튜링은 편지를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암호. Cipher.
그의 머릿속에서, 추상적인 수학이 현실의 문제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군사적 효율성. 그들은 분명 기계를 이용한 복잡한 암호 체계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직관이나 언어적 유희가 아니라, 수많은 회전자와 전기 회로로 만들어내는 순수한 수학적 암호.

그렇다면….

‘기계가 만든 암호는, 기계로 풀어야 한다.’

그것은 튜링의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 명제였다.
암호 해독은 결국 패턴을 찾는 작업이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기호의 나열 속에서 숨겨진 규칙, 즉 알고리즘을 역산해내는 것.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산’의 문제였다.

자신이 만든 ‘보편 기계’는 어떤 알고리즘이든 흉내 낼 수 있었다. 만약 독일 암호 기계의 작동 원리를 알아내고, 그 가능한 모든 조합을 빠른 속도로 계산해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만 있다면….

튜링은 깨달았다.
자신이 수년간 파고들었던 ‘계산 가능성’에 대한 이론이, 이제 인류의 역사를 좌우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폰 노이만이 제안했던 안정된 미래, 프린스턴의 평화로운 연구 생활은 더 이상 그의 마음을 붙잡지 못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거대하고 실용적인 문제에 사로잡혔다.

1938년 여름, 그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폰 노이만을 비롯한 동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그가 떠나온 대서양 서쪽에는 평화와 학문의 자유가 있었다.
그가 향하는 대서양 동쪽에는 포성과 광기,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암호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물여섯의 젊은 수학자는, 이제 이론가가 아닌 전사로서 자신의 조국을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