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 딸깍, 딸깍... 첫 번째 성공

302025년 08월 16일4

1941년 초, 블레츨리 파크의 새로운 가건물인 허트 11은 거대한 기계들의 교향곡으로 가득 찼다. 수십 대의 ‘봄브’가 24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봄브는 높이 2미터, 너비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검은색 캐비닛이었다. 그 전면에는 에니그마의 회전자를 흉내 낸 36개의 드럼이 세 줄로 배열되어 맹렬하게 회전했다. 기계가 작동할 때 나는 소리는 독특했다. 수천 개의 계전기가 쉴 새 없이 붙었다 떨어지며 내는 ‘딸깍, 딸깍, 딸깍...’ 하는 소리가 마치 수많은 시계들이 동시에 돌아가는 것처럼 들렸다.

이 기계들을 운영하는 것은 해군 여성 복무대(WRNS), 일명 ‘렌즈(Wrens)’라 불리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매일 아침 감청된 독일군 암호문과, 튜링의 팀이 제공한 ‘크립(Crib)’ 메뉴를 받았다. 메뉴에는 크립의 내용과 그에 따른 봄브의 플러그보드 연결 방식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렌즈들은 능숙한 솜씨로 봄브의 뒷면에 있는 수백 개의 전선을 메뉴에 따라 연결했다. 이것은 기계에 오늘의 ‘문제’를 설정하는 과정이었다. 설정이 끝나면, 그녀들은 스위치를 올렸다.

“봄브 가동!”

그 순간, 기계 내부의 드럼들이 일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봄브는 튜링이 설계한 대로, 에니그마의 가능한 회전자 설정 조합들을 엄청난 속도로 하나씩 테스트해 나갔다. 각 설정마다 크립의 논리적 구조와 들어맞는지 검사하고, 모순이 발견되면 즉시 해당 설정을 기각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렌즈들은 기계 앞을 지키며, 회전하는 드럼과 복잡한 계기판을 주시했다. 그들의 임무는 기계가 ‘정지(Stop)’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계가 멈춘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발견되지 않은 ‘유력한 후보’ 설정을 찾았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지는 ‘가짜 정지’였다. 기계적 결함이거나, 우연히 논리적 모순이 없었던 경우였다. 렌즈들은 기계가 멈출 때마다 재빨리 해당 설정값을 기록하고, 그 설정이 유효한지 간단한 수작업으로 검증했다. 유효하지 않으면, 다시 기계를 돌렸다.

시간은 흘러갔다. 몇 시간이고, 때로는 반나절이 넘도록 기계는 멈추지 않고 째깍거리기만 했다. 그 소리는 희망의 소리인 동시에, 초조함의 소리였다.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허트 11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한 대의 봄브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담당 렌이었던 진 발렌타인(Jean Valentine)은 여느 때처럼 기록지를 들고 기계로 다가갔다. 그녀는 멈춘 드럼의 위치(예: K-L-M)와 계기판의 플러그보드 추정값을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는 검증 절차에 들어갔다.
그녀는 옆에 있던 테스트용 에니그마 기계에 봄브가 찾아낸 설정값을 그대로 입력했다. 그리고는 감청된 암호문의 첫 몇 글자를 쳐 넣었다.

타자기에서 나온 결과는 의미 없는 알파벳의 나열이었다.
‘또 실패인가.’
그녀가 실망하며 기계를 다시 돌리려던 순간, 함께 있던 동료가 소리쳤다.

“잠깐만, 진! 그거 독일어 단어 아니야?”

진은 자신이 타이핑한 결과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A-N-X- 다음에, 독일어 WETTER(날씨)의 일부인 ...T-T-E-R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앞의 세 글자는 의미가 없었지만, 뒤따르는 단어는 명백한 독일어였다.

그 순간, 허트 11 전체가 숨을 죽였다.
찾아낸 것이다.
거의 한 달 만에, 독일 해군의 ‘샤크’ 암호 시스템의 일일 키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찾았어요! 스톱을 찾았어요!”

진의 외침과 함께 허트 11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전화를 향해 달려갔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 정보는 즉시 허트 8의 튜링에게 전달되었다.
튜링은 동료들과 함께 그날 감청된 모든 암호문들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눈앞에 놀라운 정보들이 펼쳐졌다.

대서양 곳곳에 흩어져 있는 U-보트들의 정확한 위치, 연료 잔량, 다음 공격 목표.
마치 어둠 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연합군은 적의 움직임을 손금 보듯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보는 즉시 해군 본부로 타전되었다.

그날 밤, 대서양에서는 연합군 구축함들이 U-보트들이 매복하고 있던 해역을 정확히 우회했고, 일부는 역으로 U-보트들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튜링은 허트 11의 창문 너머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봄브들을 바라보았다.
저 째깍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선원들의 목숨을 구하는 심장 박동 소리였다.
그의 상상 속 기계는, 마침내 현실 세계에서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