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사무실. 칠판에는 그가 고안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기본 구조가 그려져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게임을 공정하고 엄격한 과학적 실험으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규칙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게임의 규칙이 아니었다. 이것은 새로운 과학의 실험 프로토콜이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 쓸 내용을 정리하며, 테스트의 조건을 하나씩 명확하게 정의해 나갔다.
제1규칙: 물리적 분리 및 익명성
“가장 중요한 전제는 모든 물리적 단서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이다.”
튜링은 노트에 적었다.
세 명의 참가자, 즉 심문자(C), 인간(B), 컴퓨터(A)는 반드시 서로 다른 방에 격리되어야 한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제2규칙: 유일한 소통 수단
“모든 의사소통은 오직 기계적인 매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각 방에는 타자기나 텔레프린터 같은 텍스트 기반의 입출력 장치만 허용된다. 심문자는 질문을 타이핑해서 보내고, 인간과 컴퓨터는 타이핑으로 답변을 돌려준다.
튜링은 이 규칙의 허점을 보완했다. 만약 컴퓨터의 타이핑 속도가 인간보다 월등히 빠르거나, 오타가 전혀 없다면 그 자체로 단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기계의 응답 속도는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절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판단의 근거는 오직 답변의 ‘내용’이어야만 했다.
제3규칙: 대화 주제의 무제한성
“테스트의 범위는 수학이나 과학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지성의 모든 영역을 포함해야 한다.”
심문자는 어떤 질문이든 던질 수 있다. 복잡한 계산 문제는 물론, 시를 써보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제의 축구 경기에 대한 감상은 어떤지, 혹은 엉뚱한 농담을 이해하는지 물을 수도 있다.
컴퓨터는 이 모든 질문에 그럴듯하게 대답해야 한다. 때로는 모르는 척하고,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때로는 감정이 있는 것처럼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의 테스트가 아니라, 인간다움(human-likeness) 전반에 대한 테스트였다.
제44규칙: 참가자의 명확한 역할
- 컴퓨터(A)의 목표: 심문자를 속여서,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 인간(B)의 목표: 심문자를 도와서, 자신이 진짜 인간임을 증명하고 A가 컴퓨터임을 밝히도록 협력해야 한다.
- 심문자(C)의 목표: 일정 시간 동안의 대화 끝에, A와 B 중 누가 컴퓨터이고 누가 인간인지 정확하게 식별해야 한다.
제5규칙: 판정 기준
“판정은 단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로 결정되지 않는다. 통계적인 확률로 이루어져야 한다.”
튜링은 테스트 시간을 약 5분 정도로 제안했다. 5분간의 대화가 끝난 후, 심문자는 자신의 판정을 내린다.
이 게임을 수많은 다른 심문자들과 반복했을 때, 만약 심문자들이 70% 이상의 확률로 정답을 맞히지 못한다면(즉, 30% 이상 컴퓨터에게 속아 넘어간다면), 그 컴퓨터는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컴퓨터가 평균적인 심문자를 상당한 확률로 속일 수 있다면, 그 컴퓨터는 인간과 기능적으로 구별할 수 없는 지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은 자신이 정립한 규칙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다섯 가지 규칙은 ‘생각’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기계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철학의 영역에 있던 문제를, 실험과 통계라는 과학의 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제 이 명확한 ‘야드스틱(yardstick)’이 생겼다. 미래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더 이상 막연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해졌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
그는 이 모든 내용을 담아, 철학 저널 「마인드(Mind)」에 기고할 논문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 논문의 제목은 그의 질문만큼이나 도발적이고 간결할 터였다.
“계산 기계와 지능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