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계산 기계와 지능

422025년 08월 22일3

1950년 10월, 철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마인드(Mind)」에 한 편의 논문이 실렸다. 저자는 수학자 앨런 튜링. 논문의 제목은 간결했지만, 그 내용은 철학계와 이제 막 태동하려는 컴퓨터 과학계 모두에 거대한 파문을 던졌다.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계산 기계와 지능)

논문은 도발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했다.

“나는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고찰하고자 한다.”

튜링은 서론에서부터 이 질문이 ‘생각’과 ‘기계’라는 단어의 정의에 따라 무의미한 논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신의 대안, 즉 ‘이미테이션 게임’을 소개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독자들을 자신의 사고 실험으로 차근차근 안내했다.
방 세 개, 심문자, 인간, 그리고 컴퓨터.
오직 타자기를 통한 대화.
‘누가 인간이고 누가 컴퓨터인가?’를 맞추는 게임.

그의 글은 수학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았다. 명료하고, 재치 있었으며, 때로는 유머러스했다. 그는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생생한 비유를 사용했고, 자신의 아이디어에 제기될 수 있는 반론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것을 조목조목 반박해 나갔다.

이 논문은 단순히 ‘튜링 테스트’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분야의 철학적, 기술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선언문과도 같았다.

디지털 컴퓨터의 본질:
튜링은 논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독자들에게 ‘디지털 컴퓨터’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보편 튜링 기계’ 개념을 바탕으로, 컴퓨터란 유한한 상태를 가지며, 저장된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이산 상태 기계(discrete-state machine)임을 명확히 했다. 이것은 당시 철학자들에게는 생소했지만, 컴퓨터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설명이었다.

학습하는 기계:
그는 논문에서 ‘지능적인 기계’를 만드는 두 가지 접근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성인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하여 교육을 통해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는 후자, 즉 ‘학습하는 기계(learning machine)’의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했다.
“성인의 마음을 모방하려는 시도 대신, 왜 우리는 아이의 마음을 모방하려 하지 않는가? 만약 아이의 마음을 만들 수 있다면, 적절한 교육 과정을 통해 성인의 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의 핵심 아이디어를 수십 년이나 앞서 예견한 것이었다.

논문의 파급력:
이 논문이 발표되자 학계는 술렁였다.
철학자들은 그의 도발적인 주장에 분노하거나 매료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생각’이라는 신성한 개념을 기계적인 게임으로 격하시켰다고 비판했다. 다른 이들은 그가 철학의 오랜 난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고 극찬했다.
이제 막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 소수의 공학자들에게, 이 논문은 등대와도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기계가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 언젠가는 인간의 지능에 도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깨달았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 자체는 튜링의 논문 발표 후 몇 년 뒤에 존 매카시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분야의 실질적인 출발점은 바로 이 논문이었다.
튜링은 AI 연구의 ‘무엇을(What)’과 ‘어떻게(How)’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 ->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
  • 어떻게 만들 것인가? -> 학습하는 기계를 통해.

그는 자신의 논문이 불러올 미래의 논쟁들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논문의 후반부에서,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제기될 아홉 가지 주요 반론들을 스스로 제시하고, 그것을 하나씩 논파하기 시작했다. 마치 미래와의 체스를 두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