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은 자신의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미래의 비평가들이 던질 질문들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비평가의 역할을 자처하며, 예상되는 반론 아홉 가지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반론 1: 신학적 반론 (The Theological Objection)
“생각은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한 불멸의 영혼(immortal soul)의 기능이다. 따라서 동물이나 기계는 생각할 수 없다.”
튜링은 이 반론이 논리적 논증보다는 종교적 신념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 민감한 주제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저는 이 주장이 가진 신학적 타당성에 대해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만약 신이 전능한 존재라면, 그분께서 원하신다면 코끼리 한 마리에게 영혼을 부여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신께서 자신이 만든 인간이 컴퓨터라는 거처를 지었을 때, 그곳에 영혼을 부여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주장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의 전능함을 역으로 이용하여, 신학적 반론이 가진 독단성을 부드럽게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 문제가 과학적 논증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보았다.
반론 2: ‘타조처럼 머리만 파묻는’ 반론 (The 'Heads in the Sand' Objection)
“기계가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결과다. 그것은 인간의 우월성을 위협하는 일이다. 따라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튜링은 이 반론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리적 반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이성적인 주장이 아니라, 감정적인 위안을 구하는 태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이 태도가 지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론 3: 수학적 반론 (The Mathematical Objection)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나 튜링 자신의 연구 결과(정지 문제)가 보여주듯이, 어떤 강력한 논리 체계라도 그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산 상태 기계(컴퓨터)의 능력에 명백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인간의 지성에는 그러한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발견한 이론이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무기로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튜링은 이 반론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기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에는 한계가 없다’는 주장은 증명된 바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 역시 실수를 하고,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뇌 역시, 특정 종류의 논리적 한계를 가진 하나의 기계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그 한계를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인간 지성의 우월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론 4: 의식으로부터의 반론 (The Argument from Consciousness)
“기계가 시를 쓰거나 예술 작품을 만들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호의 조합일 뿐, 기계가 실제로 자신이 쓴 시를 ‘느끼고’ 그 의미를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진정한 생각은 즐거움,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과 의식을 동반해야만 한다.”
이것은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반론 중 하나였다.
튜링은 이 반론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테스트가 가진 근본 철학으로 되돌아갔다.
“이 주장은 결국 ‘타인의 마음에 대한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시를 쓰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그가 정말로 내면에서 감정을 느끼는지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외적인 행동을 보고 그의 내면을 추측할 뿐입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만약 어떤 기계가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소네트를 쓰고, 그 시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기계가 ‘느끼지 못한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습니까? 그 기계가 그저 ‘흉내’만 내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말 ‘경험’하고 있는 것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지능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기준으로, 기계의 지능도 인정해야 합니다. 즉, 행동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튜링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논하는 대신, 관찰 가능한 외부의 세계에 집중함으로써 의식이라는 가장 어려운 반론을 교묘하게 우회했다. 그의 테스트는 ‘기계가 느끼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느끼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