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이스의 반론

442025년 08월 23일4

튜링은 자신의 논문에서 제기될 수 있는 여러 반론들을 차례로 격파해 나갔다. 그가 마주한 다음 반론은 역사적으로 가장 뿌리가 깊고, 직관적으로도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반론 5: 여러 가지 능력 부족에 대한 주장 (Arguments from Various Disabilities)

“나는 당신이 기계가 X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튜링은 이 반론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 “기계는 결코 친절하거나, 아름답거나, 재치 있거나, 우호적일 수 없다.”
  • “기계는 옳고 그름을 구별하거나, 실수를 통해 배우거나, 사랑에 빠질 수 없다.”
  • “기계는 딸기 크림을 즐길 수 없다.”

튜링은 이러한 주장들이 대부분 경험에 기반한 섣부른 귀납적 추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컴퓨터(주로 계산기)의 제한된 기능에 근거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증기 기관만 보고서, ‘엔진은 결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미래의 기술 발전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주장에 대해, ‘학습하는 기계’의 개념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기계가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고 성능을 개선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반론과 마주했다.

반론 6: 레이디 러브레이스의 반론 (Lady Lovelace's Objection)

이 반론의 기원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찰스 배비지가 설계했던 기계식 컴퓨터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의 잠재력을 가장 깊이 이해했던 여성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가 남긴 말에서 비롯되었다.

러브레이스는 그녀의 저서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해석 기관은 독창적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어떻게 명령하는지를 알고,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It can do whatever we know how to order it to perform.)”

이 문장은 1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컴퓨터 시대의 여명기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기계는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는가?’
‘기계는 프로그램된 것을 넘어서는,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의식’ 문제만큼이나 강력한 반론이었다. 컴퓨터는 결국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의 집합체에 불과하며, 그 결과물은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결국 최초에 입력된 규칙의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 즉, 기계의 행동에는 ‘놀라움(surprise)’이 없다는 것이다.

튜링은 이 반론의 무게를 인정했다. 그는 이것이 앞선 다른 반론들과는 격이 다른,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주장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반박의 첫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기계는 결코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없다’는 진술에 대해, 저는 이것이 경험적으로 사실이 아님을 자주 느낍니다. 컴퓨터에게 복잡한 계산을 시켰을 때, 그 결과가 제 예상을 빗나가 저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 계산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기계가 독창성을 발휘했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러브레이스의 반론이 가진 더 깊은 함의, 즉 ‘결과가 필연적이라면 창의성이 아니다’라는 주장의 핵심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반론에 대한 튜링의 본격적인 대답은, 단순히 기계의 능력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터였다. 러브레이스가 던진 100년 전의 질문은, 튜링이라는 위대한 정신을 통해 마침내 그에 걸맞은 대답을 마주하게 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