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서막

472025년 08월 25일4

1952년, 튜링의 지적 탐구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그는 컴퓨터를 이용한 지능 탐구를 계속하면서도, 생물학의 근원적인 질문에 매료되었다.

‘자연은 어떻게 패턴을 만드는가?’

얼룩말의 줄무늬, 표범의 반점. 왜 어떤 패턴은 줄무늬가 되고 어떤 것은 점이 되는가? 그는 이 현상이 두 가지 화학 물질(그는 이것을 ‘모포겐(morphogen)’이라 불렀다)의 상호작용과 확산 속도의 차이 때문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이 ‘반응-확산 모델’을 수학 방정식으로 풀어냈고, 맨체스터 마크 1 컴퓨터를 이용해 그 결과를 시뮬레이션했다.

그의 노트 위에서, 컴퓨터는 생명의 형태를 모방한 아름다운 패턴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는 계산과 지능을 넘어, 생명의 비밀 그 자체에 다가서고 있었다. 그의 지적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눈부셨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세계는 여전히 공허했다.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전쟁의 동지들은 흩어졌고, 그의 연구는 너무나 독창적이어서 진정으로 이해하는 이가 드물었다. 맨체스터의 번화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영화관 밖에서 한 젊은 남자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아놀드 머레이(Arnold Murray). 열아홉 살의 실업자 청년이었다. 튜링은 그에게서 지적인 동질감보다는, 그저 대화를 나눌 상대, 자신의 고독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평범한 온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튜링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수년간 억눌러왔던 외로움을 달래는, 지극히 사적인 시간이었다.

비극은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튜링은 자신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없어진 것은 사소한 물건 몇 가지뿐,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튜링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의 논리적인 세계에서, 절도는 용납될 수 없는 규칙 위반이었다.

그는 아놀드 머레이의 지인이 범인일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그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다음 행동을 취했다.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1952년 1월 말, 튜링은 맨체스터 경찰서에 피해자 자격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도난 사건의 정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경찰은 용의자로 의심되는 아놀드 머레이의 지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머레이 씨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한 형사가 물었다.

튜링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거짓말에 서툴렀고,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을지언정, 그것을 범죄 사실처럼 숨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자신이 겪은 ‘절도’라는 범죄의 피해자였고, 사건 해결을 위해 경찰에 협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머레이와의 관계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 순간, 형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의 질문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도난당한 물건에 대한 질문은 줄어들고, 튜링과 머레이가 언제, 어디서 만났으며,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형사의 펜이 노트에 적는 내용은 더 이상 도난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적고 있는 단어는 ‘중대한 외설 행위(Gross Indecency)’였다.

튜링은 서서히 깨달았다.
상황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판 함정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가 파 놓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함정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경찰서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모든 것이 뒤바뀌고 있었다.
피해자는 피의자가 되었고, 사소한 절도 사건은 국가가 개인의 가장 내밀한 삶을 심판하는 거대한 재판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의 지적인 세계가 절정에 달한 순간, 그의 현실 세계는 가장 어두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비극의 서막은, 그렇게 어이없을 정도로 사소한 사건과, 그의 치명적인 정직함에서 비롯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