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관문: 어떤 OpenGL을 쓸 것인가?

162025년 08월 10일4

WebGL 워킹 그룹의 출범은 축포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기나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제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기술적 난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워킹 그룹의 첫 번째 공식 회의, 그 테이블 위에 가장 먼저 올라온 안건은 지극히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우리의 WebGL은, 어떤 OpenGL을 기반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 버전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WebGL의 정체성과 철학을 결정하는 첫 번째 단추와도 같았다.

당시 크로노스 그룹이 관리하던 OpenGL 표준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데스크톱 OpenGL’.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강력하고 방대한 기능의 집합체였다. PC 게임과 전문가용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기반이 되는 이 표준은 과거의 기술들과의 호환성을 위해 오래된 기능들을 많이 끌어안고 있었다. 기능이 많은 만큼 복잡했고, 모든 기능을 모든 하드웨어에서 동일하게 지원하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는 ‘OpenGL ES (for Embedded Systems)’.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스마트폰, 태블릿, 게임 콘솔과 같은 임베디드 시스템, 즉 모바일 기기를 위해 탄생한 경량화 버전이었다. 데스크톱 버전에 비해 기능은 적었지만, 오래되고 비효율적인 기능들을 과감히 쳐내고 핵심적인 기능만 남겨 훨씬 더 간결하고 엄격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WebGL 워킹 그룹의 엔지니어들은 두 갈래 길 앞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데스크톱 OpenGL을 지지하는 측의 주장은 명확했다.
“웹은 데스크톱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당연히 가장 강력한 기능을 가진 데스크톱 OpenGL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최고의 성능과 가장 풍부한 그래픽 표현력을 웹으로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엔비디아나 AMD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 엔지니어들은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들의 강력한 데스크톱 GPU 성능을 웹에서도 마음껏 뽐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반론은 즉각적이고 날카로웠다.
애플과 구글에서 모바일 플랫폼을 담당하던 엔지니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틀렸다. 미래는 모바일이다. 이미 스마트폰의 보급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금 데스크톱만을 바라보고 표준을 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어떤 할머니의 낡은 노트북에서부터 최신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한 모든 디바이스에서 동일하게 동작하는 것이 웹의 정신 아닌가?”

그들의 주장은 ‘보편성’과 ‘호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데스크톱 OpenGL의 방대한 기능 중 상당수는 구형 그래픽 카드나 모바일 GPU에서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데스크톱 버전을 표준으로 삼는다면, 특정 PC에서만 돌아가는 ‘반쪽짜리 3D 웹’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블라디미르는 묵묵히 양측의 주장을 듣고 있었다. 모질라의 입장은 명확했다. 파이어폭스는 데스크톱뿐만 아니라 모바일 버전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최고의 성능’이라는 가치보다 ‘가장 넓은 호환성’이라는 가치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데스크톱 OpenGL은 너무 많은 ‘과거의 유산’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십 년간 쌓여온 다양한 방식의 그리기 기능들이 혼재해 있죠. 이는 개발자들에게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브라우저가 보안을 검증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큰 부담이 됩니다. 반면, OpenGL ES는 처음부터 현대적인 프로그래머블 셰이더(Programmable Shader) 모델을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더 깔끔하고, 더 예측 가능하며, 더 안전합니다.”

그의 발언은 논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단순히 ‘데스크톱이냐 모바일이냐’의 문제를 넘어, ‘어떤 프로그래밍 모델이 웹에 더 적합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회의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각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제품과 플랫폼에 유리한 방향으로 논리를 펼쳤다. ‘강력한 기능’이냐, ‘단순함과 보편성’이냐. WebGL이 가야 할 첫 번째 갈림길에서, 워킹 그룹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택에 따라 미래의 웹 3D 생태계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