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의 마지막 날, 크로노스 그룹의 워킹 그룹 메일링 리스트에 간결하지만 무게감 있는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제목: Final preparations for WebGL 1.0 public launch
의장이 보낸 메일의 내용은 명확했다.
“모든 주요 브라우저 제조사들의 구현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공식 적합성 테스트 통과율도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WebGL 1.0 명세서를 대중에게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가 되었습니다.”
D-Day는 2011년 3월 3일로 정해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 현장에서 발표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새로운 기술에 가장 목말라 있는 게임 개발자들 앞에서, 웹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무대였다.
발표를 며칠 앞두고, 워킹 그룹의 핵심 멤버들은 마지막 점검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크로노스 그룹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WebGL 1.0 최종 명세서 PDF 파일과 API 퀵 레퍼런스 카드, 그리고 적합성 테스트에 대한 정보가 업로드될 준비를 마쳤다.
모질라와 구글의 홍보팀은 발표 시점에 맞춰 배포할 보도자료의 문구를 마지막까지 다듬고 있었다. 그들은 WebGL이 어떻게 웹을 바꿀 것인지, 그리고 자신들의 브라우저가 이 혁신을 어떻게 선도하고 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조용히 써 내려갔다. 그는 기술적인 성과보다는, 지난 몇 년간의 여정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평면의 세계에 입체를 그리고 싶었던 첫 아이디어의 순간, 동료들의 의심과 격려, 그리고 무엇보다 표준을 위해 함께 싸워준 경쟁사 엔지니어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2007년, 텅 빈 캔버스에 파란색 사각형 하나를 띄우고 감격했던 그날 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이제 전 세계 수억 대의 컴퓨터에 설치된 브라우저의 기본 기능으로 탑재되기 직전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발표 전날 밤, 워킹 그룹의 주요 멤버들은 비공식적인 화상 회의를 가졌다. 화면 너머로 보이는 얼굴들은 모두 상기되어 있었다. 구글, 모질라, 애플, 오페라, 엔비디아… 치열하게 논쟁하고 때로는 서로를 비난하기도 했던 이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얼굴에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함께 완수했다는 동지애와 자부심이 가득했다.
“모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의장이 말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없는 수많은 엔지니어와 기여자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우리는 함께 웹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죠.”
구글의 엔지니어가 웃으며 말했다. “1.0은 끝이 아니라 출발선일 뿐입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1.0 발표는 끝이 아니었다. 이제 막 개발자 커뮤니티가 이 새로운 도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요구사항과 개선점이 쏟아져 나올 터였다. WebGL 2.0에 대한 논의는 이미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블라디미르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처음 꿈꿨던 그 미래를 떠올렸다. 플러그인 없이, 모든 브라우저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3D 웹. 그 미래가 이제 불과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길고 길었던 제2부, ‘표준이라는 이름의 전쟁’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마침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제3부의 장이 열릴 터였다. 웹이라는 거대한 캔버스는 이제 막, 새로운 차원을 향해 펼쳐지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