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그인이라는 이름의 용병들.

4

발행일: 2025년 08월 04일

블라디미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웹에서 3차원 세상을 구현하려는 욕망은 그가 처음 품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웹 세계에는 3D 그래픽을 구현하는 강력한 세력들이 존재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용병(Mercenary)’이었다.

어도비 플래시(Adobe Flash), 자바 애플릿(Java Applet),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엑스(ActiveX). 이들은 브라우저라는 본국의 군대가 아니라, 외부에서 고용된 강력한 용병 부대와 같았다.

그들은 웹 표준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브라우저의 샌드박스를 우회하여 운영체제의 자원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고, 덕분에 CPU는 물론 GPU의 연산 능력까지도 일부 활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화려했다.

플래시로 만들어진 현란한 3D 게임, 자바 애플릿으로 구현된 복잡한 데이터 시각화, 액티브엑스를 이용한 기업용 3D 솔루션까지. 이 용병들은 납작했던 웹페이지 위에 자신들만의 작은 왕국을 건설하며, 당시의 웹 기술로는 불가능했던 풍부하고 동적인 경험을 사용자에게 선사했다.

많은 개발자와 기업들이 이 용병 부대를 고용했다.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사용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그 화려함 이면에 드리운 치명적인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용병은 어디까지나 용병일 뿐, 웹이라는 국가의 진정한 시민이 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문제는 ‘관문’이었다.
사용자가 플래시 기반의 콘텐츠를 보려면,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라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먼저 설치해야 했다. ‘이 콘텐츠를 보려면 플러그인을 설치하세요’라는 메시지는 웹의 유려한 흐름을 끊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그 번거로움 앞에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 문제는 ‘안전’이었다.
브라우저 바깥의 시스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그 힘은 곧 보안의 구멍이 되었다. 플러그인의 취약점은 해커들의 단골 공격 목표였고, 브라우저를 다운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웹페이지를 열었을 뿐인데 컴퓨터 전체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사용자들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단절’이었다.
플러그인으로 실행되는 콘텐츠는 웹페이지 안에 박혀 있는 검은 상자(Black Box)와 같았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같은 웹의 기본 언어들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직접 제어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웹페이지의 일부가 아니라, 그저 웹페이지 위에 ‘얹혀’ 있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블라디미르에게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웹의 미래가 외부에서 빌려온 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웹의 일부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웹의 일부여야만 했다.

플러그인이라는 용병들은 역설적으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증명해주었다.

‘사람들은 웹에서 3D를 원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강력한 수요의 증거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용병을 대체할, 웹의 질서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정규군이었다.

블라디미르는 다시 모니터 위, HTML5 명세서의 한 구절로 시선을 돌렸다.

<canvas>

그는 이 비어있는 도화지 위에서 용병들이 아닌, 웹의 정규군을 훈련시킬 가능성을 보았다. 별도의 설치도, 보안의 위협도, 기술적 단절도 없는 순수한 웹 기술.

그의 목표는 더 선명해졌다. 플러그인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