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들의 현재.

492025년 08월 27일4

세월이 흘러, WebGL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기술 뉴스에 오르내리는 뜨거운 화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공기나 물처럼, 웹 개발 생태계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기반 기술이 되었다. 그렇다면, 웹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던 그 치열했던 여정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블라디미르 부키체비치 (Vladimir Vukićević)
WebGL의 불씨를 처음 지폈던 그는,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른 후에도 오랫동안 모질라에 남아 파이어폭스의 그래픽스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특히 WebGL 2.0 표준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그는 모질라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VR/AR과 같은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유니티(Unity)와 같은 회사에서 실시간 3D 렌더링 엔진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의 열정은 여전히,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인터랙티브 그래픽스의 최전선을 향해 있었다. 그는 웹이라는 캔버스를 넘어, 더 넓은 세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크로노스 그룹 (Khronos Group) & WebGL 워킹 그룹
이 위대한 협력의 장은 WebGL의 성공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WebGL 2.0을 성공적으로 출시했으며,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환경에 맞춰 명세서를 유지보수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WebGPU라는 새로운 표준을 제정하는 데 그대로 이어졌다. WebGL 워킹 그룹에 참여했던 많은 엔지니어들은 이제 W3C의 ‘GPU for the Web’ 그룹에서 WebGPU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들은 한 시대의 표준을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시대의 표준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구글 (Google)
O3D라는 대안을 과감히 포기하고 WebGL의 표준에 합류했던 구글은, WebGL 생태계의 가장 강력한 플레이어 중 하나가 되었다. 구글 맵스, 구글 어스, 그리고 수많은 크롬 익스페리먼트 프로젝트를 통해 WebGL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렸다. 그들은 ANGLE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윈도우 환경에서 WebGL의 호환성과 성능을 보장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현재는 WebGPU 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크롬 브라우저를 통해 가장 먼저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는 혁신의 선두에 서 있다.

애플 (Apple)
오랜 침묵 끝에 합류했던 애플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WebGL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자신들의 네이티브 그래픽 API인 ‘메탈(Metal)’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WebGPU 표준화 과정에서도, 그들은 다른 브라우저들이 사용하는 벌칸(Vulkan) 기반이 아닌, 메탈과의 호환성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표준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안과 성능, 그리고 자신들의 플랫폼에 대한 통제권을 놓지 않는 그들의 고집은, 여전히 웹 기술 표준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다.

리카르도 카베요 몬테로 (Mr.doob) & Three.js 커뮤니티
Three.js를 창조한 리카르도는 상업적인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오픈소스 프로젝트로서 Three.js를 이끌고 있다. 그는 지금도 깃허브(GitHub)에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버그를 수정하며, 전 세계 수많은 기여자(Contributor)들과 함께 라이브러리를 발전시키고 있다. Three.js는 이제 특정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수많은 개발자들이 함께 키워나가는 거대한 커뮤니티의 자산이 되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예제와 문서는 새로운 개발자들이 WebGL의 세계로 들어오는 가장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주고 있다.

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써 내려간 코드 한 줄, 회의실에서 나눴던 논쟁 하나가 모여 오늘날의 웹을 만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싸우지 않지만, 그들이 함께 완성한 WebGL이라는 유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십억 개의 스크린 위에서 빛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술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며, 또 어떻게 미래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위대한 증언으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