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눈

682025년 09월 05일4

키메라 프로젝트의 유산을 이어받은 드미트리는, 헤드리스 WebGPU를 단순한 서버 렌더링 도구를 넘어, 구글의 거대한 인프라와 결합하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시험대는 바로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팀이었다.

자율주행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들은 실제 자동차를 도로에서 주행시키기 전에, 수억, 수십억 킬로미터에 달하는 가상의 도로 환경에서 AI 모델을 먼저 훈련시키고 테스트해야 했다. 이 시뮬레이션 환경은 실제 세상과 최대한 유사해야 했다. 다양한 날씨, 조명 조건,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까지 모두 포함해야 했다.

자율주행 시뮬레이션팀의 리더, 켄드라가 드미트리를 찾아왔다.
“드미트리, 저희는 지금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녀는 거대한 데이터센터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서버가 저희 시뮬레이션을 위해 24시간 돌아가고 있습니다. 각 서버에는 고성능 GPU가 장착되어 있죠. 문제는, 이 수천 개의 GPU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동일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겁니다.”

그녀가 설명하는 문제는 복잡했다.
각 서버는 서로 다른 제조사의 GPU, 다른 버전의 드라이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 환경에 맞춰 별도의 렌더링 코드를 작성하고 유지보수해야 했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고, 다시 AI 모델의 입력으로 넣는 과정도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저희는 서버 클러스터 전체를 위한, 하나의 표준화된 그래픽 및 계산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그때, 당신 팀의 헤드리스 WebGPU 프로젝트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켄드라의 눈빛은 간절했다.
“만약 저희가 모든 서버에서 WebGPU를 구동할 수 있다면… 저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드미트리가 꿈꾸던 바로 그 시나리오였다.
WebGPU가 브라우저를 넘어,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기술 중 하나인 자율주행차의 ‘기계의 눈’을 생성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는 것.

두 팀의 대규모 협력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Dawn 팀의 목표는, 헤드리스 WebGPU 구현체인 Dawn을 데이터센터의 모든 서버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구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엔비디아, AMD의 전문가들과 직접 협력하며, 서버용 GPU 드라이버에 최적화된 빌드를 만들어냈다.

자율주행팀의 목표는, 그들의 복잡한 시뮬레이션 엔진을 WebGPU API 위에서 다시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차적으로 생성된 도로, 건물, 자동차 모델을 렌더링하기 위해 메시 셰이더 확장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빗방울이 아스팔트에 튀는 효과,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빛 번짐 같은 사실적인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컴퓨트 셰이더를 사용했다.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AI 모델과의 연동이었다.
이전에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고, 그 파일을 다시 AI 모델이 읽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WebGPU 렌더 파이프라인이 생성한 렌더링 결과(센서 이미지)는 GPU 메모리에서 떠나지 않고, 곧바로 컴퓨트 파이프라인을 통해 AI 추론 모델의 입력 텐서(Tensor)로 직접 전달되었다. 파일 입출력이라는 거대한 병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GPU는 이제 단순히 세상을 ‘그리는’ 눈이 아니었다.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두뇌의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하게 된 것이다.

몇 달간의 공동 개발 끝에, 첫 번째 통합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켄드라는 가상의 고속도로 환경에서, 갑자기 다른 차가 끼어드는 돌발 상황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데이터센터의 수백 개 서버가 동시에 이 시나리오를 렌더링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본 시뮬레이션 영상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었다.
동시에, AI 모델이 이 영상들을 입력받아 내리는 판단—‘감속’, ‘차선 변경’—이 데이터로 출력되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작동했다. 개발 속도는 이전보다 몇 배나 빨라졌고, 서버 운영 비용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켄드라가 감탄하며 말했다.
“믿을 수 없군요, 드미트리. 당신들은 단순히 그래픽 API를 만든 게 아니에요. 당신들은 우리에게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구축할 수 있는, 통일된 현실 생성 엔진을 선물한 겁니다.”

드미트리는 데이터센터의 모니터링 화면을 바라보았다. 수천 개의 GPU가 WebGPU라는 하나의 언어로 소통하며, 인간을 위해 더 안전한 세상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더 이상 웹 개발자나 그래픽스 엔지니어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이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기계가 세상을 학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시대의 인프라 설계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코드는 이제 브라우저의 캔버스를 넘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