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시대의 광고, 그리고 규모의 저주
제2화
발행일: 2025년 05월 30일
온보딩 자료를 모두 읽은 알렉스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는 마치 고고학자가 유적지에서 잘 만들어진 석기 시대 도구를 발견한 듯한, 그러나 그 도구가 21세기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듯한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다가갔다.
“사라, 질문이 있습니다.”
“벌써 다 읽었어요? 말해봐요.”
사라는 코드 리뷰를 하던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알렉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삽입 주문서(Insertion Order)’ 방식 말입니다. 광고주 하나와 매체사 하나 사이에서는 어떻게든 작동할 수 있겠죠. 하지만 만약 나이키가 500개의 다른 웹사이트에 광고하고 싶다면요? 그럼 500개의 다른 담당자와 연락하고, 500개의 엑셀 파일을 관리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사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신입이 정확한 지점을 짚었다는 만족감의 표시였다.
“정확해요. 그게 첫 번째 문제. 광고주의 고통이죠. 그럼 반대로 생각해볼까요? 뉴욕타임스 같은 거대 언론사는 어떨까요? 그들은 수천, 수만 명의 잠재적 광고주를 어떻게 상대할까요?”
“그건… 불가능에 가깝겠네요.”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결국 그들은 소수의 거대 광고주하고만 직접 계약을 맺게 되죠. 자, 그럼 진짜 문제가 뭔지 보여줄게요. 마침 좋은 기회네. 따라와요.”
사라는 알렉스를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팀 리더인 데이비드 첸과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이미 앉아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피로와 고민이 역력했다.
“알렉스, 여긴 우리 팀 리더 데이비드. 그리고 이쪽은 대형 언론사 ‘글로벌 헤럴드’의 디지털 사업부 총괄이신 존 밀러 씨예요. 인사해요.”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 존 밀러는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사라.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저희 웹사이트는 하루에만 수천 개의 기사를 쏟아냅니다. 정치, 경제, 스포츠, 연예… 페이지 수로 따지면 수백만 개가 넘어요. 월간 페이지뷰는 이제 5억을 넘어섰습니다.”
자랑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 대신 절망이 묻어났다.
“문제는 이겁니다. 저희 영업팀이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도, 직접 계약을 통해 팔 수 있는 광고 지면은 전체의 10%가 채 안 돼요. 메인 페이지 최상단, 경제 섹션의 가장 눈에 띄는 곳 같은 ‘프리미엄 인벤토리’뿐이죠.”
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쳤다.
“그럼 나머지 90%는요? 텅 빈 채로 방치되거나,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로 저희 자사 서비스 홍보 배너를 걸어놓습니다. 돈 한 푼 안 되는 광고로요. 이건 마치 거대한 백화점을 지어놓고 1층 명품관만 겨우 운영하는 꼴입니다. 2층부터 10층까지는 텅 비어있는데 매일 관리비는 나가는 거죠!”
알렉스는 숨을 죽이고 그의 말을 들었다. 삽입 주문서 방식의 치명적인 약점이 눈앞에서 실체화되는 순간이었다. 소수의 비싼 광고 지면은 거래할 수 있지만, 수백만 개에 달하는 나머지 ‘잉여 인벤토리(Remnant Inventory)’는 속수무책으로 버려지고 있었다.
존의 하소연은 계속됐다.
“더 미치겠는 건, 모든 방문자의 가치가 다르다는 겁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접속한 금융인이 저희 경제 기사를 볼 때와, 대학생이 연예 기사를 볼 때, 그들에게 노출되는 광고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방식으로는 그저 똑같은 ‘1 페이지뷰’일 뿐입니다. 우리는 금을 모래 가격에 팔고 있거나, 아예 버리고 있는 겁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온 알렉스는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존 밀러의 절규가 맴돌았다.
그때, 사라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이제 알겠어요? 우리가 싸우고 있는 괴물의 정체를?”
“…….”
“그게 바로 ‘규모의 저주(The Curse of Scale)’예요. 하나일 때는 합리적이었던 방식이, 그 수가 백만, 수억이 되는 순간 괴물로 변해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저주. 이메일과 엑셀로는 절대 이 저주를 풀 수 없어요.”
사라는 화이트보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적힌 AdX
라는 글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판을 짜야만 했어요. 수백만 명의 판매자와 수백만 명의 구매자가 단 한순간에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시장. 이메일과 엑셀이 아닌, 코드로 돌아가는 시장을 말이죠.”
알렉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구글이라는 거대 기업의 신입사원이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신세계가 내린 ‘규모의 저주’를 풀기 위해 소환된, 문제 해결의 최전선에 선 엔지니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