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광고 생태계는 거대했다. 애드 익스체인지(AdX)라는 강력한 중앙 시장을 중심으로, DSP와 SSP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돌아갔다. 특히 매체사 입장에서 구글의 SSP(현 Google Ad Manager)는 자신들의 광고 지면을 가장 손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처럼 여겨졌다.
구글의 시스템은 이른바 ‘워터폴(Waterfall)’이라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매체사는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광고(주로 직접 계약한 광고)를 먼저 보여주고, 거기서 팔리지 않은 나머지 잉여 인벤토리를 구글 애드 익스체인지에 넘겨 경매에 부치는 방식이었다. 마치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명품은 자체적으로 팔고, 남은 재고를 아울렛에 넘기는 것과 같았다.
이 구조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시장의 다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구글이 아닌 다른 신생 애드 익스체인지나 SSP 업체들은, 구글이 선점한 이 구조 때문에 자신들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공정한 경쟁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들은 항상 구글이 먹고 남은 ‘찌꺼기’ 인벤토리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바람은 매체사 진영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몇몇 진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매체사들과, 구글에 대항하려는 신생 SSP 업체들이 비밀리에 손을 잡았다. 그들은 구글의 워터폴 구조를 완전히 우회하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냈다.
그 기술의 이름은 ‘헤더 비딩(Header Bidding)’이었다.
어느 날 팀 회의. 데이비드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기존의 워터폴 구조를 그렸다.
기존 방식 (워터폴):
광고 요청
-> 매체사 자체 광고 서버
-> (안 팔리면)
-> 구글 애드 익스체인지
-> (또 안 팔리면)
-> 기타 작은 광고 네트워크
“이 구조에서 의사 결정권은 항상 한 단계 위쪽에 있습니다. 구글은 매체사가 직접 팔지 못한 것만 받고, 다른 네트워크는 구글이 못 판 것만 받죠. 공정하지 않은 싸움입니다.”
그는 이 그림 옆에, 헤더 비딩의 작동 방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방식 (헤더 비딩):
광고 요청
-> (페이지 헤더의 Javascript 코드 실행)
-> 동시에 구글, A사, B사, C사에 입찰 요청
-> (모든 입찰가 비교)
-> 최고가 낙찰
알렉스는 그 그림을 보고 숨을 삼켰다.
이것은 혁명이었다.
헤더 비딩의 핵심은 웹사이트 페이지의 <head>
태그 안에 심어진 작은 자바스크립트 코드였다. 이 코드는 구글의 광고 서버를 호출하기 ‘전에’ 먼저 실행된다. 그리고 마치 여러 명에게 동시에 전화를 걸 듯, 구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경쟁 애드 익스체인지에게 동시에 “이 광고 지면 살 사람? 얼마 줄 건데?”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동일한 인벤토리를 두고 실시간으로 경쟁하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공정 경매가 열리는 셈이었다.
데이비드가 말을 이었다.
“이 기술이 확산되면, 우리는 더 이상 매체사로부터 우선적으로 인벤토리를 공급받는 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우리도 수많은 경쟁자 중 하나가 되어, 매 경매마다 최고의 가격을 제시해야만 광고를 따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구글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역습이었다. 일부 매체사들이 헤더 비딩을 도입한 결과, 광고 수익이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70%까지 증가했다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더 많은 매체사들이 구글의 품을 떠나 헤더 비딩 연합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알렉스는 이 기술의 파괴력을 실감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성벽 안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해왔다. 하지만 이제 성벽 바깥의 수많은 경쟁자들이 연합하여, 성벽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새로운 길을 뚫어버린 것이다.
팀 내에서는 격론이 오갔다.
“우리 기술 규격과 맞지 않는 외부 시스템을 막아야 합니다!”
“아닙니다. 막으려고 할수록 매체사들의 이탈만 가속화될 뿐입니다.”
구글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 새로운 흐름을 적으로 규정하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이 흐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인가.
알렉스는 직감했다. 프로그래머틱 광고의 역사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중앙화된 제국의 시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