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 혹은 고립
제29화
발행일: 2025년 06월 13일
헤더 비딩의 등장은 구글 광고팀 내부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왔다.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철학과 전략의 문제였다. 수년간 지켜온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외부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팀은 물론, 상위 리더십까지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회의실은 연일 격론으로 뜨거웠다.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았다. 주로 영업과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이건 명백한 우리 시스템에 대한 공격입니다. 헤더 비딩은 페이지 로딩 속도를 저하시키고, 복잡한 자바스크립트 코드는 보안에 취약합니다. 우리는 파트너들에게 헤더 비딩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우리 시스템을 사용하는 매체사가 헤더 비딩을 도입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제한하거나 정책적으로 금지해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고립’ 전략이었다. 성벽을 더 높이 쌓아 외부의 침입을 막고, 내부의 질서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었다. 성을 떠나려는 자들에게는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도 암암리에 섞여 있었다.
반면,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사라가 대표로 의견을 냈다.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술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으려 했던 시도가 성공한 역사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순간, 우리는 ‘매체사의 수익 증대’를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으로 비칠 겁니다. 매체사들은 더 빠르게 우리를 떠나겠죠.”
알렉스는 양측의 주장을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헤더 비딩의 코드를 직접 분석해보았다. 강경파의 주장처럼 분명 기술적인 문제점들은 존재했다. 여러 번의 네트워크 요청으로 인한 지연 시간 증가, 복잡한 설정 등. 하지만 그것은 기술이 발전하며 해결될 문제였다.
더 중요한 것은 헤더 비딩이 담고 있는 ‘본질’이었다. 그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에 대한 시장의 갈망이었다. 구글이 이 갈망을 억누르려 한다면, 결국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 자명했다.
마침내, 데이비드 첸이 주재하는 핵심 의사결정 회의가 열렸다. 알렉스는 주니어 엔지니어였지만, 최근 여러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통찰력 덕분에 이례적으로 회의에 배석할 기회를 얻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강경론과 온건론이 다시 한번 맞붙었다. 결론이 나지 않는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던 중, 데이비드가 조용히 알렉스를 지목했다.
“알렉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몇 년간 우리 시스템의 가장 밑바닥부터 뜯어본 사람으로서,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말해봐.”
모든 시선이 알렉스에게 쏠렸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강을 막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스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강물이 불어나면, 둑을 더 높이 쌓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둑이 터져 더 큰 홍수가 나게 됩니다. 현명한 방법은 더 거대한 댐을 지어, 그 강물을 모두 우리 댐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의 흐름을 우리가 더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거죠.”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그의 비유에 집중했다.
“헤더 비딩은 이미 거대한 강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강물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강물을 우리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헤더 비딩은 클라이언트 측, 즉 사용자의 브라우저에서 실행되어 페이지 속도를 느리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모든 경매 과정을 서버 측에서 대신 처리해주는 ‘서버-투-서버(Server-to-Server)’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경쟁 SSP들에게 말하는 겁니다. ‘좋다, 너희도 우리 시장에 들어와서 공정하게 경쟁해라. 대신 너희가 매체사 페이지에 복잡한 코드를 심을 필요 없이, 우리 서버와 직접 연결하자. 그러면 페이지 속도도 빨라지고 모두에게 이득이다.’ 라고요. 우리는 경쟁의 ‘장소’를 제공하고, 경쟁의 ‘규칙’을 주도하는 플랫폼이 되는 겁니다.”
그것은 ‘고립’도, 단순한 ‘타협’도 아니었다. 경쟁자들을 모두 자신의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여, 더 큰 판을 만들겠다는 ‘포용’ 전략이었다.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알렉스의 발언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데이비드 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알렉스의 아이디어에서 구글이 나아갈 길을 보았다.
“알렉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헤더 비딩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을 우리 시스템의 일부로 흡수한다. 오늘부로 ‘오픈 비딩(Open Bidding)’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우리의 서버에서 모든 경쟁사의 입찰을 실시간으로 받아 공정하게 경쟁시키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그날의 결정은 구글 광고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독점적인 제국을 고집하는 대신, 개방적인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선택한 것이다. 알렉스는 자신이 단순히 엔지니어가 아니라, 회사의 미래 전략을 결정하는 중요한 논의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책임감을 느꼈다.